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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Sep 28. 2022

배부른 소리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이 더운 날 하루 종일 씻지도 못했고, 남편의 늦은 퇴근에 저녁식사 근처에도 못 간 상태였다. 마지막에 먹은 건 아이의 낮잠시간에 허겁지겁 주워 먹은 과자 나부랭이쯤. 머리를 안 감겠다고 내 얼굴을 꼬집는 아이를 달래고, 이를 안 닦겠다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잡으러 다니고, 잠을 안 자겠다며 계속 빨빨 돌아다니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이불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내 머리 위로 책을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며 언젠간 내 코뼈를 부러뜨리겠구나 싶을 때쯤 내 삶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난 지금 뭐 하고 있나. 


어렵게 임신이 되어선지 아이를 낳고 키워오면서 힘들어도 불평을 하기 힘들었다. 간절히 원할 땐 언제고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힘들면 물리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내 주변엔 아직도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는 친구들이 있기에 더욱 맘속 이야기를 감췄다. 잠을 못 잔다거나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거나 난 지금 뭐 하고 있나 이런 고민 따위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부른 소리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진 남이 하는 소리 혹은 남에게 없는 무엇을 가진 내가 하는 소리.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직장인의 푸념이, 연애를 원하는 사람에겐 커플의 다툼이, 그리고 죽은 자에겐 산자에게 주어진 어느 하루가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으려나. 요즘 힘이 들 때마다 ‘배부른 소리’를 생각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소중하게 주어진 시간임을 느끼게 되니 무색무취로 지나간다고 생각된 나의 하루에 색이 물든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참 놀다 졸린 아이는 자신의 베개를 들고 와 내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졌다. 방금 씻겨놨지만 금세 땀으로 젖은 아이 머리 냄새 맡아본다. 꼬마 꼬순내. 그 순간 거창하게 나를 찾고 인생을 찾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나의 오만했던 생각에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그때 소포클레스의 말이 떠올랐다. ‘고로 오늘 네가 내뱉는 투정은 배부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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