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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18. 2022

할머니의 노래

“이거리 저거리 밭거리 천지만지 도만지 짝발이 새앙지 도두만지- “


장도칼! 


물소리 사이로 들리는 낯설지 않은 노래 가락에 흥얼거리다 마지막 단어가 불현듯 생각났다. 설거지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아이와 다리를 엇갈리게 두고 앉아 다리 하나씩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랑 함께 하던 놀이였다.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서 할머니와 마주 앉아 덥고 무료했던 여름 오후를 이 노래를 부르며 보내곤 했다. 할머니와 내 다리가 하나씩 남아있을 때면 누구 다리가 걸릴까 두근댔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할머니가 부르던 노래가 도통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순 없었지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할머니만 부를 수 있는 특별한 노래 같았다. 그렇게 매년 부르다 보니 어느 날부턴 할머니보다 더 크게 부를 수 있었다. 그때 그 놀이를 지금 내 아이와 엄마가 하고 있다. 엄마 다리사이에 있던 자신의 다리를 톡톡 치며 빼내어주니 아이는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따라 해 보겠다고 더 정신없는 외계어를 외치며 할머니 다리를 툭툭치고 있다. 젖은 손을 닦으며 아이와 엄마 곁으로 가 내 다리도 한번 껴본다.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일 텐데 신기하게도 가사가 생각났다. 시간이 흘러 엄마랑 기억하는 단어들이 다르긴 했지만 박자가 얼추 맞으니 이래저래 넘어간다. 다리를 치며 노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를 두고 엄마한테 묻는다. 


엄마, 근데 무슨 뜻이야?

몰라

몰라?


엄마도 그냥 외할머니가 불렀던 노래를 기억할 뿐이라고 했다. 아무 말 대잔치 같은 이 노래는 일본 노래 잔재인가 (할머니는 일본 노래도 종종 흥얼거려주셨다) 아님 혹시 분신사마 같은 무서운 주문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걸고 있는 건가? 아이에게 불러주려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초록창에 앞 두 단어를 넣으니 특별함 따위는 비웃듯 답이 바로 나왔다. 작곡가 미상인 민요로 지역마다 노랫말이 매우 다양한데 특별한 뜻은 없고 발음상 재미있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사와 최대한 비슷한 가사를 찾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너무 제각각이라 포기했다. 엄마가 부른 노랫말도,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가사도 아마 할머니가 불렀던 노래랑 또 달랐으리라. 


언젠간 아이도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추억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님 내가 아이의 아이에게 불러주고 있을 때 옆에 와서 같이 부를지도 모르겠다. 나와 엄마가 세월의 무게만큼 가사를 변질시킨 것처럼  내 아이도 또 다른 말로 바꿔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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