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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넥도트

선을 긋는 건 나, 그걸 지우는 것도 나,

by 투명인간

모두의 내면엔 ‘선’이 존재합니다.

내게 그 선은 자기 방어를 위한 경계선입니다.

그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경고의 의미로

호루라기를 불고, 가슴 주머니에서

노란 카드를 꺼내 듭니다.


짧은 호루라기 소리 끝에,

공기 한 줄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호루라기 소리가

상대방에게는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나 봅니다.

우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일곱 살짜리 마음을 아직 품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다음번엔 빨간 카드를 꺼낼 겁니다.


내 안의 기준과 선을 잔뜩 그어두고,

그것을 넘는 사람들에겐 염라대왕이 된 듯

선과 악을 저울질하며 살아가는 게 참 피곤했습니다.


어느 날, 평소엔 흑백필터를 씌운 듯 보이던 세상이

그날따라 너무 화창해서 욕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오늘도 선을 넘는 사람들은 여전했지만,

그냥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도 웃었습니다.

“그래, 웃으니까 보기 좋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분명 기분이 나빴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괜찮았습니다.


그 후로도 웃고 또 웃었습니다.

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선한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마음속에 그어놨던 선을 지우자,

그 자리에 새로운 출발선이 생겨났습니다.


내일이 조금은 반가워지려 합니다.

그게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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