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다/드러내다
2018.02.17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나에게,
아름다움이 뭐냐고 물어봤고,
아름다울 필요가 있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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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못해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름다운 나를 꿈꿨다.
아름다운 상태로 애인을 만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왠지, 저 글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치열하게 싸워왔던 내 감정 소용돌이의 탓할 구멍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난 아직 괜찮은 건가.
내가 나이기 때문에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라서 좋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나를 견뎌내 줬으면 좋겠다.
훗날, 어느 누군가, 혹은 내가.
약 따위가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그날.
네가 내 다른 모습을 보고도 놀라서 상처받고 도망치지 않는 그날.
그전에 내가 먼저 나 또는 누구를 견뎌냈으면 좋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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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글을 썼다가 저장글로 보내버린 글이다. 2018년 때만 해도, 질병을 가진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질병을 하나 갖고 있는데, 이 질병으로 꽤나 우울함을 가지고 다녔다.
익명의 글을 하나 봤는데,
상대방이 지병이 있는데 결혼해도 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우려했던 시선들은 익명을 빌려 노출되었고,
그 익명들은 결혼을 고민하는 여성에게 결혼 반대의 댓글을 달았다.
처음 봤을 때 50여 개의 댓글이 달렸고 더 달려서 93개가 되었는데,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 말곤 글쓴이에게 결혼 반대를 외쳤다.
뇌전증은 꽤나 사람을 괴롭고 슬프고 고독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기피하거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사람을 곁에 두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사람을 부족하게 바라보며
부족하다 실제로 언급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있다.
본인과 다르기에 '너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도장을 찍어댔다.
난 15년 정도를 질병과 같이 살고 있다.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때에는 숨기고, 들킬까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나를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순간, 내 질병은 나에게서 작아졌다.
익명의 글쓴이는 계속 쓰러지는 남자친구를 보며 결혼 후에 간병을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지만,
동시에 남자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러짐을 들켰던 그 순간을 매우 미워했을 거라 예상해 본다.
타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발작증세는,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며 언제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정신적 피로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의 시선을 안겨준다.
선입견이 너무도 강해서 이름까지 바꾼 뇌전증.
뇌전증에 대해 쓰러졌을 때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면서도 아쉽고 무엇보다 슬프다.
원해서 얻은 게 아니기 때문.
내가 통제가 안 되기 때문.
만약 내 지인 중 한 명이 같이 있기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썼다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매우 슬펐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너무 이해가 됐을 것이다.
고민했다는 거 자체에 그 사람과는 인연이 아닐 것이다.
쓰러지는 그 기분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를 것이다.
괴롭고 슬프고 태어남을 미워하게 되는 그런 질병이었다.
그래도, 신은 나에게 절망만을 안겨주지 않았다.
내 옆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익명의 뇌전증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들이 붙어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