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전유된 돌보고 기르는 집안의 노동
약 16년간 임금노동자이면서 가사노동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퇴근하면 육출이라고 하고, 아이들이 잠들면 육퇴라며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게 당연시되는 때에, 나는 사실 퇴근이 없었다. 다음날 먹을 것, 입힐 것, 아이들 스케줄 확인, 어질러진 집안일 정리를 하고 나면 내가 읽고 싶은 책, 내가 흠뻑 빠지고 싶은 공연/문화생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사실 세상에 없는 게 사실 내게 편했다. 그렇게 내 취향과 선택들이 없어지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삶은 길고, 아이들도 가족들도 학습하기에 그게 영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가사노동에 드는 품이 커서, 임금노동자로서 업무의 질이 계속해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 임금의 기반인 컨설팅 업무는 수많은 기초자료를 습득하고 그를 바탕으로 분석, 구조화, 제안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가장 적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을 수행하는 업무의 효율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들의 보육, 교육의 문제, 집안일 들은 끊임없이 내 업무시간을 단기-장기로 분절했다. 분절된 시간에서 분투해 봤자,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다. 난 자본주의 임금노동자 경쟁자들에 비해 두 배의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미 오래전에 작업복이 앞치마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히려 작업복은 앞치마보다 훨씬 더 적은 권력 만을 보장하는데,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작업복과 앞치마 둘 다를 입어야 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떨어져서 이에 대항해 투쟁할 여력마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증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미 노동으로 하고 있는 일, 자본이 우리에게 가하고 있는 일, 그리고 이에 저항하여 싸울 힘이 있음을 드러낼 역량이 있다는 점이다. - 혁명의 영점 p50 -
임금 노동자 4~5년 차 되던 시절,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면접 질문은 육아와 가족보다 회사 일을 더 우선시할 수 있느냐였다. 단서는 있었다. 그 직종에는 아이가 있는 유부녀를 채용해 본 적이 없으나, 임금과 대우는 업계 최고이니, 너는 그에 맞는 노동을 회사에 제공한다면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지금은 성공을 위해 나도 나의 배우자도 최선을 다하지만, 가족보다 회사를 더 우선시한다는 약속은 못하겠다." 그리곤 그 이직은 좌절되었다. 그렇게 다짐이라도 받아놔야 임금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경영자의 확신은 그 이후로도 몇 년을 더 그 회사에 여성직원이 채용되지 않도록 작용했다고 들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승진 누락을 경험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가사노동, 일상노동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지만, 누군가는 그 구조안에서도 생산성을 만들어내고 승승장구 잘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을 깨버린 여성, 슈퍼우먼 콤플렉스 이런 사례들이 실제로 내 승진 불발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매시간 최선을 다한 나의 임금노동과 일상노동은 늘 서로에게 변명거리가 되어 각각의 공간과 관계들에게 미안하다 말해야 했다. 언젠가부턴 경쟁자를 이기느니, 최선을 다하는 나를 사랑하자는 자위에 현혹되어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이기지 않으려는 마음먹음이 누군가에겐 안심이 되어 임금노동자와 일상 노동자 두 공간을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허용해 주었다.
이쯤 되면 일상노동이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도대체 여성이라고 해서 집안일에 더 특별히 힘들고 애쓴다고 칭얼거리는 걸까? 요즘과 같이 가사노동을 용역을 맡기거나, 가사 노동 분담을 철저하게 약속해서 하면 되지... 라며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키곤 한다. 실제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마리아미즈-' 책 읽기 모임에서 싱글이자, 그 모임에 유일한 남자였던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합의해서 노동을 정확하게 분담하면 되는 일 아니냐. 그 친구는 대가 없는 노동의 분담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문제제기 한 것이겠지만, 집안의 노동은 대가를 매기기 어려운 노동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양말을 기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것이 집안의 노동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학교 실과시간에 배웠던 가사(家事) 노동은 집안에서 발생되는 노동의 총량의 25%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사노동이란 단어 대신 일상노동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상노동에 대한 언급은 누구 개인 특히 우리 남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에 편재한 구조적 문제를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일상 노동은 생산(임금노동)을 위한 생산자의 부양(扶養)을 위해 한 사람에게 전유된 노동을 말한다. 돌보고 기르는 노동, 그것을 일상노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물론 남성도 아이를 아내를 부모를 돌보고 기른다. 우리 동네엔 파마머리의 전업주부 아저씨가 사신다. 남성-여성의 성역할이 이 글의 주된 논지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며, 돌보고 기르는 노동에 대한 대가와 가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마리아 미즈의 말에 따르면 세계 어느 국가도 다 점령(북한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다. ㅎ)한 자본주의가 파생한 가부장제는 생산/재생산 노동을 가르고, 재생산 노동(일상노동) 은 대가와 가치를 전무시킨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냈다.
이 '문명화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기(저자: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한 가정주부이거나 자본가를 위한 임금노동자로, 혹은 둘 다로 훈련되었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에게 사용된 실제적 폭력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내면화했다. 그들은 이를 자진해서 한 것으로, 사랑으로 규정했다. 자기 억압에서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였다...... 가부장적 생산양식 모델을 자본주의가 발전시키면서 생산과정과 생산품을 통제하는 이들 자신이 생산자가 아니라 전유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이른바 생산성은 타자 - 결국은 여성 - 생산자의 존재와 종속을 전제로 한다. 월러스티이 말한 것처럼 ' 잔혹하게도 노동력을 낳는 이들이 식량을 기르는 이들을 부양하고, 이들은 다른 원료를 생산하는 이들을 부양하고, 또 이들은 공업 생산에 관련된 이들을 부양한다'(wallerstein,1974: 86)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p172-
전무된 일상노동의 대가와 가치를 전복시키고자 한다. 페미니즘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성부불노동 임금화 투쟁, 돌봄의 사회화 등 이미 진척된 논의들이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역사와 함께 자본주의가 파괴한 소중한 가치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이와 궤를 같이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 글에서 전무된 일상노동에 이름을 부르고 성과를 서술하여 그 대가와 가치를 제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쓰고 있다. 퇴직을 하고 전담 일상노동자가 되면서 내 마음에 들어온 그녀들, 일상노동을 묵묵히 해내면서도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웃음을 띤 그 친구들. 미움과 상실보다는 온화함과 이해심으로 단단한 마음을 가진 그 친구들이 발하는 빛을 내 글이라는 거울에 반사시켜 세상에 눈부시게 쏘고 싶었다. 그녀들과 내가 사랑과 인내라는 이름으로 수행해 낸 보이지 않는 돌보고 기르는 노동이 어떤 것들인지 자세히 서술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인내 안에서는 자본주의의 구조가 심어준 무겁고도 어려운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한 여성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다. 혁명의 영점에 여성이 있고 기르고 돌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래의 인용에서 그 누구들 확인 아니 확신하기 바란다.
하지만 집 밖에서까지 일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어떻게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또한 정말로 한 남자와 함께 산다는 생각을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을까? 일자리를 잃으면 어떡하지? 나이가 들어서, 젊음(생산성)과 매력(여성으로서의 생산성)이 지금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최소한의 힘마저도 잃게 되면? 또 아이들은 어쩌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혹은 아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조차 없었던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는 않을까? 게이 관계를 감당할 수는 있을까? 고립과 배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희생을 기꺼이 치르려 할까? 하지만 남성과의 관계를 진짜로 감당할 형편이 되기는 할까? 문제는 이런 것들이 어째서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투쟁이 필요한가이다. -혁명의 영점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