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아 작가의 에스키스와 시 쓰기의 교집합에 대하여
며칠 전, 시 쓰기 공부에 대한 단상을 끄적이면서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시 쓰기에는 어느 정도의 본능적인 재능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지루하고 물리적인 노동이다." 영감은 하늘에서 우아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찌질한 일상을 쥐어짜 내고 수없이 문장을 난도질하는 '막노동' 끝에 탄생한다는 나의 이 서늘한 지론은, 비단 글쓰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안국동의 작은 갤러리 아트로직 스페이스에서 열린 오상아 작가의 개인전 <Moonquake : 고요속의 진동>을 찾았다.
오상아 작가는 내가 오래전부터 진심으로 응원해 온 분이다. 전시장에 걸린 신작들은 여전히 입이 떡 벌어지게 멋졌다. 캔버스 위에는 관계의 단절과 닿을 수 없는 연약한 지점들이 아주 고요하고도 단단한 색채로 칠해져 있었다.
전시의 타이틀인 'Moonquake(월진)'은 달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뜻한다고 했다. 겉으로는 소리 하나 없이 평온해 보이는 달의 표면 아래에서, 중력의 충돌로 인해 미세하고도 끊임없는 진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읽는 순간, 나는 전시장에 걸린 매끈한 캔버스 뒤에 숨겨진 작가의 '에스키스(Esquisse, 밑그림)' 노트를 떠올렸다.
과거에 우연히 작가님의 에스키스 뭉치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갤러리 하얀 벽에 걸린 완성된 그림의 우아함만을 소비한다. 하지만 그 하나의 고요한 캔버스가 탄생하기 위해,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선들이 그어지고 찢기고 버려졌는지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었다. 수십, 수백 장에 달하는 거칠고 치열한 밑그림의 흔적들. 그것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피 튀기는 사투의 기록에 가까웠다.
그 압도적인 작업량 앞에서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고작 민화 화판 앞에서 붓질 몇 번 뜻대로 안 된다고 툴툴대고, 시 한 편 쓰며 방바닥을 좀 굴렀다고 유난을 떨었던 나의 얄팍함이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아, 나는 정말 한참 먼 초짜였구나.‘
고요한 달의 이면에 격렬한 월진이 숨어있듯, 매끈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이면에는 창작자의 뼈를 깎는 '에스키스'의 진동이 숨어 있다.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시인의 밤이나, 선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종이를 구겨 버리는 화가의 밤이나 그 본질은 완전히 똑같다. 예술이란 영감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포장된 아주 지독한 막노동인 것이다.
이 치열한 과정을 건너뛰고 얄팍한 요령만으로 멋진 결과물을 훔치려 들 때, 그림은 얕아지고 시는 감정에 취해 오글거려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련할 정도로 밑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그 무식한 시간만이 타인의 마음을 흔드는 진짜 진동(Quake)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캔버스 뒤에 켜켜이 쌓인 작가의 서늘한 땀 냄새를 맡고 돌아온 날.
나는 감히 투덜거림을 멈추고, 다시 묵묵히 방바닥에 엎드려 내 몫의 빈 노트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이 지루한 노동의 진동을 견뎌내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진짜 문장도 완성할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