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폭력 앞에서 시를 공부한다는 것

엎드려 짜내는 영감과 지독한 부끄러움에 대하여

by 김가인 오로시

얼마 전, 누군가 내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시 쓰기 공부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 순진한 질문을 받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속마음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서 치밀어 오른 아주 솔직하고도 건방진 대답은 사실 이랬다. "어느 정도의 타고난 문학적 감수성, 그러니까 시를 향한 본능적인 재능이 베이스로 깔려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예술의 영역에서 재능이란 때로 폭력적일 만큼 절대적이다. 남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서 기어이 은유를 끄집어내는 직관력은 학원이나 교재가 가르쳐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 한들, 그것을 단단한 문장으로 직조해 내는 것은 100% 후천적인 노동의 영역이다. 타고난 감각이 번뜩이는 불씨라면, 그 불씨를 활활 태워 타인에게 가닿게 만드는 것은 결국 지루하고 물리적인 훈련뿐이다.

가장 무식하고도 확실한 공부는 단연 '필사(筆寫)'다.

좋은 시를 눈으로만 스윽 읽고 넘기는 것은 남의 화려한 옷을 눈요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음에 박히는 시를 발견하면 나는 반드시 펜을 쥐고 그 문장들을 노트에 꾹꾹 눌러 담는다.


최근 몇 달째 내 필사 노트의 지분을 독차지하고 있는 책은 하재연 시인의 『우주적인 안녕』이다. 서점에서 그 순간의 감정에 훅 취해 충동적으로 샀다가 나중에 펼쳐보고 "내가 대체 왜 이런 걸 샀지?" 하며 후회하는 시집들이 수두룩한데, 참 희한하게도 이 시집만큼은 몇 달을 두고두고 읽고 베껴 써도 질리거나 물리지가 않는다.


필사는 단순히 글자를 베껴 쓰는 노동이 아니다. 2년째 민화를 배우며 옛 그림의 선을 수없이 따라 긋는 '모사' 작업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진리가 하나 있다. 모사는 겉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형식을 내 몸에 통과시켜 나만의 감각으로 재배열하는 숭고한 수행이라는 사실이다. 시 역시 마찬가지다. 질리지 않는 타인의 완성된 호흡을 내 손끝으로 반복해 덧그리는 과정은, 시의 구조와 리듬감을 내 몸의 근육에 직접 새겨 넣는 가장 탁월한 감각 훈련이다.




그렇게 남의 문장으로 감각을 예열했다면, 그다음은 내 삶을 낯설게 뜯어볼 차례다.


흔히들 시인이라고 하면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번뜩 영감을 받아 시를 써 내려갈 거라 상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고상한 영감이 아니다. 평소에는 시로 써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충동 따위는 잘 들지도 않는다.

나의 영감은 철저히 물리적인 자세에서 출발한다.

침대에 작정하고 '엎드릴 때'.

펜을 쥐고 배를 전기장판의 온열로 따뜻하게 지지는 채 시를 쓰려고 느슨하게 힘을 빼고 엎드려야만, 비로소 머릿속에 온갖 시상들이 스르륵 흘러 나온다. 오늘 겪었던 짜증 나는 일, 어제 누군가 툭 던졌던 말, 아주 오래전 인상 깊게 남았던 기억의 파편들. 나는 침대에 엎드려 이 평범하고 때론 찌질한 일상의 조각들을 쥐어짜 내어 낯선 언어로 엮어낸다. 나에게 영감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서 채굴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끝에는 가장 뼈아픈 마지막 공부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나의 부끄러움을 직면하는 일'이다.


왕초보 시절, 처음 시의 형태를 흉내 내기 시작했을 때 썼던 글들을 지금 다시 꺼내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다. '이게 대체 시야, 일기야?' 싶을 정도로 오글거리는 문장들. 더 끔찍한 것은, 그때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잔뜩 취해 "나 참 잘 썼다"며 그 얄팍한 글들을 여기저기 자랑스럽게 내보여주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흑역사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한 오글거림을 견뎌내는 것이 시 공부의 완성이자 성장의 증거다. 과거의 내 글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 감정을 객관화하고 서늘하게 도려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지금 쓰는 글들도 훗날 다시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질 테지만, 나는 그 부끄러움을 연료 삼아 초고의 잔가지를 무자비하게 쳐내고 퇴고를 거듭할 뿐이다.


누군가 다시 내게 시 쓰기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재능이라는 환상 뒤에 숨지 않고, 엎드려서 일상을 쥐어짜고, 남의 글을 베껴 쓰며, 과거의 내 오글거림을 매일 서늘하게 도려내는 지독한 노동을 견디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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