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운다는 건, 고도의 심리전이다

백리향이 내게 가르쳐준 적당한 무심함에 대하여

by 김가인 오로시


우연히 마주친 사진 한 장에 홀려 충동적으로 백리향 세 포트를 들였다. 빈 화분 하나에 셋이 오밀조밀하게 다 들어갈 줄 알았던 나의 얄팍한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뿌리가 어찌나 튼실한지 화분 하나에 한 녀석을 심고 나니 자리가 꽉 차버렸다.


결국 기존 화단에 있던 식물을 야외로 강제 이주시키고, 남은 한 녀석은 이케아에서 사둔 빈 껍데기 화분에 욱여넣는 대대적인 흙장난을 치르고서야 소동이 끝났다. 손톱 밑에 까맣게 흙이 끼었지만, 애나 어른이나 흙장난은 참으로 재미난 노릇이다. 우당탕탕 흙장난을 마치고 베란다 한구석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녀석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름은 향기가 백 리를 간다 하여 백리향(百里香)이지만, 곁에 가만히 서 있는다고 해서 향을 훅 풍겨오는 법은 없다. 손끝으로 작은 잎사귀들을 살짝 스치고 쓰다듬어야 비로소 짙고 상쾌한 허브 향을 내뿜는다. 함부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고, 누군가 다가와 알아봐 줄 때만 제 향을 내어주는 정중하고 묵직한 태도다.


이 녀석은 위로 쑥쑥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땅을 기듯 옆으로 넓게 퍼지며 자라는 식물이다. 흙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카펫처럼 바닥을 덮어버리며, 잡초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누구나 다 위로만 높이 자라려고 아등바등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바닥을 기며 자신의 영토를 단단하게 다지는 이 녀석의 생존 방식이 높게 솟은 나무보다 오히려 더 지독하고 끈질겨 보였다.


척박한 땅과 한겨울의 추위도 견디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지만, 이 녀석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흙이 축축한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아주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식물을 키운다는 건, 대상의 기질을 파악하고 나의 조바심을 다스리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우리는 흔히 물을 자주 주고 매일 들여다보는 것을 '애정'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애정의 탈을 쓴 참견이자,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이기적인 통제 욕구일 뿐이다. 불과 얼마 전, 나는 화분 속에서 숨이 막혀 썩어가던 내 타마린드의 엉킨 뿌리를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식물이나 사람이나, 과도한 애정과 통제는 결국 상대를 질식하게 만든다.


진짜 식물을 살리는 길은 조금 무심한 듯 방치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겉흙이 바싹 마를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려주는 일. 잎이 살짝 힘을 잃고 자신만의 갈증을 표현할 때, 비로소 시원한 물을 흠뻑 내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로 자라지 않는다고, 당장 향기를 내뿜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충동적인 흙장난으로 베란다에 들인 이 작은 백리향 세 포트는, 나에게 아주 훌륭한 관계의 철학을 가르쳐주고 있다. 초여름이 오면 바닥을 기던 이 척박한 녀석도 연분홍색의 아주 작은 꽃을 피워낼 것이다. 그 작고 앙증맞은 꽃의 꽃말이 다름 아닌 '용기'라고 한다.

매일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싶은 욕망을 참고, 적당히 무심해질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진짜 이 식물을, 그리고 내 곁의 존재들을 숨 쉬게 하는 길임을 흙 묻은 손을 씻어내며 조용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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