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장은 나보다 먼저 지혜로워지기로 했다

빵 한 조각의 더부룩함이 가르쳐준 서늘한 나이 듦에 대하여

by 김가인 오로시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체감하는 장소는, 잔주름이 비치는 화장대 거울 앞이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식탁 앞이다.


한때 나는 대식가라는 타이틀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지 못하는 식탐은 젊음이 가진 에너지가 만들어낸 여유라고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밥상머리에서 스스로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는 날이 잦아졌다.


가장 씁쓸한 깨달음은 내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밀가루와의 작별에서 왔다. 예전에는 빵 한 조각을 삼키면 "아, 든든하다"며 기분 좋게 배를 두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든든함'의 실체가 사실은 늙어버린 위장이 소화해 내지 못해 헉헉대는 '더부룩함'이자 '과부하'였음을 서늘하게 깨닫고 있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에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우유나 유제품, 밀가루를 삼키면 몸이 먼저 무겁게 가라앉으며 파업을 선언한다. 머리로는 늘 '건강식으로, 양은 적게 먹어야지' 생각만 하고 실천을 유예해 왔건만, 이제는 내 몸이 살기 위해 강제로 불량한 것들을 끊어내라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기분이다. 결국 늙는다는 건, 몸이 스스로 생존을 위해 식단을 아주 깐깐하고 건조하게 편집해 나가는 과정인가 보다.


어릴 적에는 나이 드는 일이 내심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륜과 연식이 쌓이면 자연스레 학식과 지혜가 생기고, 선택의 기로에서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어른의 단단한 자신감이 부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으레 그런 지혜로운 어른의 범주에 속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언저리의 나이가 되어보니 안다. 나이가 든다고 무조건 현명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애나 어른이나 다를 바 없이 옹졸할 수 있고, 지혜롭게 늙기 위해서는 젊을 때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내면을 닦고 욕망을 통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건, 현명하게 늙으려 발버둥 치는 내 이성보다 내 위장이 먼저 '현명하게 좀 먹으라'며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는 지금 그나마 조금씩 즐기는 빵 한 조각마저 완전히 끊어내야 하는 완벽한 금욕의 나이가 오겠지 생각하면, 입안에 씁쓸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마음 가장 깊고 은밀한 곳을 솔직하게 파헤쳐보자면, 결국 "다른 건 다 지혜로워져도 좋으니 피부만큼은 안 늙었으면 좋겠다"고 수천 번 외치고 있는 얄팍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다 늙어야 하는 명제 앞에 놓여 있다면, 기왕이면 현명하면서도 눈에 띄게 예쁘게 늙어가고 싶은 속물적인 욕망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늙는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무한한 가능성이나 폭발적인 에너지로 밀어붙이는 시기가 아니라, 내 몸에 맞지 않는 것들을 덜어내고 비워내며 삶의 나침반을 정교하게 고쳐 매는 시기다. 쓰라린 생존형 운동을 일상에 끼워 넣고, 처지는 입꼬리를 억지로라도 올려 무의식적인 주름의 방향을 관리하는 요즘이다.


이 건조하고 씁쓸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도 식탁 위에서 무거운 욕망 하나를 내려놓고 거울 앞에서 가장 괜찮은 표정 하나를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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