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맥을 긋자, 비로소 그림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 거대한 화폭에 지쳐 도망친 작은 초충도의 세계에서 배운 것

by 김가인 오로시

거대한 화폭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은 생각보다 진이 빠진다.


최근 큼직한 민화들을 연달아 완성하고 나니 붓을 쥘 체력마저 얄팍해졌다. 무언가 편안하고, 금방 끝낼 수 있는 '쉬어가는 그림'이 필요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도피하듯 펼쳐 든 것이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그중에서도 양귀비 그림이었다.


캔버스가 작아졌으니 한결 수월할 거라 믿었던 내 예상은 붓을 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초충도는 이전에 그렸던 화려한 모란도와는 아주 다른 세계였다. 모란도가 일정한 규칙과 반복적인 패턴으로 화면을 웅장하게 채워나가는 건축물 같다면, 초충도는 정밀한 미시의 세계였다. 완벽한 식물도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파리가 휘어지는 미세한 굴곡이나 꽃수술의 형태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포착해 내야만 했다. 작다고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반전은 뜻밖에도 '잎사귀'에서 일어났다.


그림의 주인공은 당연히 화려하게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선을 사로잡는 꽃잎 묘사에만 공을 들이고, 배경이 되는 초록색 잎사귀들은 다소 하찮게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잎맥을 그어 내렸다. 완성해 놓고 보니 어딘가 밋밋하고 박제가 된 식물처럼 생기가 없었다.


내 붓질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잎맥은 조금 더 힘 있고, 굵고 진하게 들어가야 해요."


선생님의 붓끝이 내가 대충 그어둔 흐릿한 선 위를 단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면의 종이 위에 박제되어 있던 잎사귀들이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단지 선 몇 개를 굵고 선명하게 그었을 뿐인데, 그림 전체에 피가 돌고 호흡이 생겨났다. 오메, 신기한 것.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왜 잎맥을 하찮게 여겼을까.

생각해 보면 잎맥이야말로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과 영양분을 식물 구석구석으로 실어 나르는 가장 본질적인 생명선이다. 우리는 늘 남의 눈에 화려하게 띄는 '꽃'에만 시선을 빼앗겨, 정작 그 꽃을 피워내고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선들의 위대함을 잊고 산다.


9년 동안 남의 화려한 브랜드를 디자인하며 크고 거창한 결과물만 좇아왔던 내 지난 삶도 어쩌면 이와 같았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꽃잎의 색깔만 치장하느라, 내 삶을 지탱하는 진짜 잎맥들은 흐릿하게 방치한 채 썩어가도록 두었던 것은 아닐까.


잎맥의 기적을 경험하고 난 뒤, 나는 초충도라는 정밀한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요즘은 아예 더 작은 사이즈의 초충도를 펼쳐두고, 잎사귀 하나 벌레 한 마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화려한 모란으로 가득 찬 큰 그림은 잠시 미뤄두려 한다. 당분간은 이 좁은 화폭 안에서 나를 지탱하는 작고 선명한 잎맥들을 긋는 훈련을 계속할 참이다. 이 작고 단단한 선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다시 거대한 화폭 앞에 섰을 때 그 어떤 꽃보다 생생하게 숨 쉬는 나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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