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드레스보다 무거웠던 10년의 잔소리,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순백의 무거운 드레스, 천장을 수놓은 화려한 생화 장식, 그리고 쉴 새 없이 봉투가 오가는 축의대.
아끼는 동생의 결혼식장에서 나는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서늘한 현실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돈이 없으면 사랑을 공표하는 일조차 벅찬 사치가 되어버렸구나 싶어서.
나는 소위 말하는 '노웨딩(No-wedding)' 족이다. 식을 올리지 않고 부부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10년 전의 나는 허례허식이 싫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의 지인들 앞에서 1시간 남짓 꼭두각시처럼 미소 지어야 하는 그 컨베이어 벨트 같은 예식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새 출발을 하는 두 사람의 안녕보다, 하객 수와 식대 단가가 더 중요하게 취급받는 촌극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단의 대가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나의 부모님은 무려 10년 동안 "뿌린 축의금을 거두지 못했다"며 잔소리를 하셨다. 축하를 주고받아야 할 성스러운 자리가 어느새 어른들의 '품앗이 정산' 무대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씁쓸한 민낯을, 나는 내 삶의 피로도를 담보로 겪어내야 했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떠오른 '스몰 웨딩'은 어떨까. 유럽의 작은 마을처럼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진짜 소중한 이들만 모여 춤추고 밥을 먹는 소박한 풍경.
그러나 한국에 상륙한 스몰 웨딩은 결코 '스몰'하지 않다. 하객 수만 줄었을 뿐, 장소를 대관하고 디렉팅 업체를 부르고 빈 공간을 꽃으로 채우는 비용은 일반 예식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신부가 짊어져야 할 수고로움은 곱절이 되고, 비용은 더 잔인해지는 기적의 논리다.
둘이 누울 집 한 채 구하기 숨 막히는 세상에서, 단 하루의 겉치레를 위해 이토록 막대한 비용과 감정을 착취당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새 출발의 형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웨딩 10년 차인 나는 이제 와서 묘한 역설을 마주한다. 극단적인 생략 또한 완벽한 정답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곁의 지인들은 수없이 바뀌었기에, 그들에게 우리의 결합을 공표하지 않은 것은 전혀 아쉽지 않다. 그러나 가족은 다르다. 식을 생략한 탓에, 나는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얼굴 한번 마주하지 못하고 지나친 친척 어른들을 여전히 안고 살아간다.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두 세계가 섞이는 과정임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노웨딩'이 새로운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지만,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입장에서 감히 한마디 보태고 싶다.
수천만 원을 태워 부모님의 축의금을 수금하는 허례허식이나 이름만 거창한 스몰 웨딩은 거부하되,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 이제 한 배를 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작고 진실한 '선언의 자리'는 분명 필요하다고.
화려한 꽃길을 걷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축복을 빌었다. 껍데기만 남은 웨딩 문화 속에서도, 그들이 짊어질 삶의 무게만큼은 가볍고 단단하기를.
10년 전 청첩장 한 장 돌리지 않았던 나의 유별난 선택도, 결국은 그 단단함을 찾기 위한 나만의 치열한 방식이었음을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