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0
눈을 뜨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눈을 떠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그런 날의 아침은 이유 모를 기쁨과 안정으로 채워졌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 오늘부터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휴식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마음 한편은 무거웠지만, 때로는 그토록 간절했던 휴식이었기에 기다리던 택배를 받는 순간처럼 묘한 설렘도 함께 느껴졌다.
십여 년 넘게 사람들과 부딪치며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잠시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것이 지나치게 치열했던 탓인지, 아니면 나 또한 세월을 이기지 못했던 탓인지 몸에는 조금씩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신호들은 어느 순간 분명한 증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경기 침체로 회사마저 어려워지자, 마치 세상이 나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막상 쉬려니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긴장과 열정이 억눌러 두었던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고, 때로는 공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집을 나서자 왠지 모를 상쾌함이 나를 맞이했다. 기분 좋은 바람과 곧 시작될 무더위를 품은 햇빛이 내려쬐며 사방을 밝히고 있었다.
몸 이곳저곳이 불편해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오래 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오히려 휴식의 핑계를 제공해 주었고, 그 덕에 마음만큼은 어느 정도 평온해지는 듯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어릴 적 막연히 꿈꾸던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힘든 순간도 많았고 정신없이 바쁜 날들도 이어졌지만, 늘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불확실해진 나의 미래를 확신으로 바꿀 무언가를 찾고 싶어졌기 때문일까, 문득 타인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관찰자가 된 듯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몸은 가볍지 않았지만, 눈만큼은 가볍게 움직이며 주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평소에는 잘 찾지 않던 곳이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는 늘 이유와 활기가 있기 마련이다. 북적이는 번화가 한가운데서, 혹시라도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기적처럼 작은 불씨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물론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오랜만에 찾은 번화가는 소문대로 많이 변해 있었다. 코로나의 여파라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비어 있는 상가들이 눈에 띄었고, 한여름에도 늘 활기차던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시간대의 문제일 수도 있었겠지만, 한때는 사소한 것 따위는 개의치 않고 언제나 살아 숨 쉬던 거리였다. 오래 걸을 수 없는 나는 카페에 앉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어진 휴식기를 어떻게 보낼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곱씹어 보았다. 그러나 희미한 윤곽조차 보이지 않자 불안은 곧 가시를 세웠다.
“몸이 아픈 건 핑계 아니야?”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게 맞아?”
하루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불안은 유독 집요하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왔다.
돌이켜보면 불안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그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여가 시간마다 공부를 하거나 잔업을 하며 시간을 채워왔다. 그렇게 불안을 가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러나 정신없던 일상에서 벗어나자, 나는 결국 불안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과 함께, 나의 긴 휴식의 첫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