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 1
불안과 함께 무기한의 이 휴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섰다. 문을 닫으며 국물이 떠올랐다. 따끈한 것.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순대와 고기가 가득 찬 뚝배기를 떠올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시장 골목을 지나며 여러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허기진 배를 기대감으로 달래며 골목을 벗어나던 순간, 생각지도 못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굵은 두 글자, 휴무였다.
나는 잠시 서 있었다. 그 굵은 글자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유리창으로 보이는 캄캄한 가게를 바라보며 덤덤히 팔을 들어 올려 휴대폰 화면을 켰다. 휴대폰 위에서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니 근처 순댓국밥집의 목록이 나왔다. 다행하게도 눈앞의 그 굵은 두 글자와 같은 글자는 없었다. 오늘만큼은 순댓국을 먹겠다는 마음에 손가락을 또 바쁘게 움직였다. 많은 뚝배기들 사진과 리뷰를 한참을 읽으며 그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은 점심시간답게 붐볐다. 빈자리를 찾으며 테이블부터 훑어봤다. 사람들은 말없이 국을 떠먹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왔을 때, 뚝배기에서 김이 올랐다.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오래 보지는 않았다.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익숙한 맛이 바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침샘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숟갈을 조금 늦게 들어갔다. 더 뜨겁지도, 더 깊지도 않았다. 나는 그릇을 끝까지 비웠다. 남기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한층 느려진 발걸음으로 서점에 들러보기로 했다. 집을 나올 때의 그 기대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금 걸으며 몸을 가볍게 한 뒤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나를 위로하듯 얼굴을 스쳤다
서점은 시원했다.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책뿐만 아니라 문구류나 소소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 덕분일까, 성인 독서량이 줄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공간에는 제법 활기가 돌았다. 늘 그렇듯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 매대로 향했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요즘의 분위기나 흐름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권의 책을 훑어보다가 유튜브에서 추천 서적으로 올라왔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몇 장을 읽어보았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부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유튜브에서 출판사의 홍보인지 리뷰 영상인지 모를 콘텐츠에서 극찬을 받았던 책이었는데, 손이 페이지 위에 멈춰 있었다. 번역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난 이 책의 한 페이지가 참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또 덤덤히 팔을 들어 올려 휴대폰 화면을 켜고 그 위에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책의 평균 평점은 높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니 평가는 제각각이었다. 최저 평점의 리뷰들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이 적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책을 덮고 내려놓았다.
서점 밖으로 나와 나는 무덥지만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려 집으로 향하여 걷기로 했다. 평소보다는 조금 속도를 늦춰 평소와 다르게 그냥 지나쳤을 그 거리에 느리게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식사를 해결하는 일부터 책을 고르는 일까지, 나는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리뷰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들여다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었을까. 그다지 사치스럽지도 않은 한 끼 식사와 한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나는 누군가의 경험과 평가를 빌려 판단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결정하는 것이 이렇게 번거로워졌을까?
나는 그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인기차트 100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