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잠든 얼굴 옆에서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42화. 잠든 얼굴 옆에서

그 밤,
격렬했던 사랑의 흔적이
아직 방 안에 남아 있을 때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숨은 고르고,
표정은 무방비였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편안해 보였다.


---

미화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그의 핸드폰.

미화의 손이
그쪽으로 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보지 말자.
지금까지 잘 버텼잖아.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받지 않던 전화들.
늘 같은 이름들.
늘 같은 침묵.

이제는
확인하지 않으면
미화 자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

미화는
핸드폰을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금 화면에
떠오른 알림들.
지나간 부재중 전화 목록.

그 이름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

익숙한 성과
익숙한 직함.

뉴스에서
몇 번이고
본 얼굴들.

처음엔
믿고 싶었다.
그냥
중요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자신이 옆에 있을 땐
피하는 배려라고.


---

하지만
시간은
너무 일정했고,
패턴은
너무 완벽했다.


---

미화는
통화 기록을
하나씩
되짚었다.

자신과 함께 있던 시간.
자신이
그의 품에서
가장 안심했던 순간들.

그 시간대에
어김없이
비어 있는 그의 기록.


---

가슴이
서서히
식어갔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한
깨달음이
미화를 덮쳤다.


---

나는
그의 전부가 아니라
그의 틈이었구나.


---

미화는
핸드폰을
원래 자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더 보지 않았다.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

침대에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미화는
그의 등 뒤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나는
온전한 사랑을
원했어.”

그는
듣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듣지 못할 말이었다.


---

미화는
천장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제
사랑은
확인되었고,
의심은
사실이 되었다.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

알고도
곁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알았기에
떠날 것인가.

그 밤,
미화의 사랑은
조용히
다음 단계로
건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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