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풀어놓은 과거
5화
담담히 풀어놓는 과거
알바를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성진과 단둘이 카운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룸은 손님이 없어 한가롭고, 청소와 주문만 끝나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다.
그날도 그는 조용히 카운터 뒤에서
노트북을 정리하다가 문득 나를 바라봤다.
“혹시… 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
성진은 한숨을 섞지 않고,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저에게는 어머니가 있었죠.
정확히 말하면, 그분이 저를 이해해 준 적은 거의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요구와 학대, 술주정…
그리고 누나와 저를 갈라놓곤 했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운터 위에 손을 얹었다.
손톱 사이로 힘이 들어간 듯, 숨을 깊이 들이켰다.
“저는 그걸 피하려고, 어떻게든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외할머니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지만,
중학생 때부터 하숙집에 살면서 혼자서 밥 먹고, 생활비 걱정하며 살아야 했죠.”
나는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보며, 한마디도 끊지 않았다.
그가 내 앞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저 듣는 존재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어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죠.
하지만 어머니가 워낙 강했고, 저와 누나에게 상처를 남겼어요.
누나는… 어릴 때 친척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었고,
그 사실이 표면에 드러났을 때 집안 모두가 누나를 탓했죠.
저 역시 어머니의 사주로 누나에게 막말을 했던 게 지금도 후회돼요.”
성진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나는 그 속에서 깊은 상처와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았다.
단지, 일어난 일과 그때의 자신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누나가 22살 때…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때 저는 두 살 차이라 누나를 챙기고 싶었지만,
어린 마음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죠.
누나가 제게 남긴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써도, 잔재처럼 남아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분노나 슬픔의 폭발이 없었다.
단지, 삶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는 담담함만 있었다.
“청년기가 되어서도 쉽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며 유흥가에서 알바를 했죠.
돈을 벌어 오라며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받았어요.
차비, 담뱃값 빼고 모든 돈을 드렸죠.
그때도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듣고, 그의 삶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사람이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살아도 마음 한켠에는 늘 상처가 남아요.
누나의 죽음, 어머니의 욕설과 학대, 그리고 제 자신을 향한 후회…”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그의 어깨너머로 그 깊은 눈빛을 바라보며,
그가 겪어온 시간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경험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강인하면서도 따뜻하고, 단호하지만 배려심 깊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배웠죠.
그래서 지금 이 노래방에서도, 사람을 대하고 공간을 지킬 때,
저만의 원칙과 철학을 지켜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 알바가 단순히 일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성진의 삶과 철학을 가까이서 배우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과거를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충분했다.
성진의 말은 나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릴 여지를 남기지 않으면서도
그의 삶의 깊이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담담한 사장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와 철학을
이 작은 알바를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성진의 과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의 존재를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