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은 별다른 이유 없이 시작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by 여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라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으로 꼽습니다.

"달리기"에 관한 책이지만 단순히 러너들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저도 달라기에 관심이 없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스무 살 즈음이었는데 그땐 이 책의 진가를 전혀 몰랐습니다.

달리기를 인생에 비유하고 꾸준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마냥 따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시절 저는 무엇 하나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저 그런 교훈을 늘어놓은 책으로만 기억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꾸준함'의 가치를 조금씩 알게 된 후,

다시 이 책을 펼쳤을 때 전혀 다른 문장들이 보였습니다.


하루키는 루틴형 인간으로 유명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고 풀마라톤을 40번 넘게 완주한 러너입니다.


그는 '왜 매일 달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저에게는 우문현답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실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하냐"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죠

"그냥 해야 하니깐 하는 거예요"

그저 오늘 할 일을 해내는 것 그것뿐입니다.


매일 달리는 사람도 달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달려야 하니깐 뛰는 날이 더 많을 겁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요.

"왜 이렇게 귀찮게까지 하려 했지? 하고 돌아보면,

분명 처음에는 작지만 소중한 동기가 있었을 거예요.


누군가가 나에게 동기를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그 작은 불씨를 내가 계속 살리는 것

그게 결국 꾸준함이고 그것만이 해내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글쓰기의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합니다.


"재능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재능이 언제, 얼마나 나올지

자기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영감은 예고 없이 소진되고,

영감이 끝나면 글도 끝나는 사람도 많다고 하루키는 말합니다.


그래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입니다.

꾸준함은 통제할 수 없는 재능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니까요.


하루키는 말합니다.


"드라마틱하게 요절해 전설이 되는 삶도 멋지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건 끝까지 자기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체력과 일관성이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왜 매일같이, 굳이 그렇게 힘들게 달릴까요?


"같은 10년이라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이 훨씬 바람직하다. 달리기는 그 목적을 도와준다"


달리기를 통해 하루키는 자신의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건강을 위한 습관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운동을 '살을 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는 도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운동이 귀찮아도,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니까요.


책에는 하루키가 센트럴파크에서 아침 달리기를 하던 중

하버드 여학생들이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의 모습은 활기차고 멋졌지만,

하루키는 자신은 그들과는 달리 '천천히 오래 달리는 타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나는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이 문장에서 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뛰어난 사람들도 많고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합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하루키의 태도는 어쩌면 우리가 실패에 덜 좌절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그 하루가 '지는 일에 길들여지는 하루'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한 달리기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 책은 '꾸준함'이라는 태도가 결국 삶을 밀고 나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라는 걸 조용히, 단단하게 알려줍니다.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지금 어떤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은 마음 깊숙이 닿을 것입니다.

이전 01화나무와 닮아있는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