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말이 되고, 말은 다시 기억이 된다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이제 인사이트뱅크의 콘텐츠를 유튜브에서도 동시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유튜브 바로가기)
씹고, 뜯고, 즐기고.
한때 유행했던 잇몸 약 광고의 문구를 떠올리면 우리가 말을 나누는 방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뒷담화’라는 그럴싸한 조어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씹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어 곱씹고, 때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내용을 덧붙여 가며 재가공하기도 합니다. 상대의 속내를 살필 때는 ‘간을 본다’고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문득 ‘회자’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는 유통기한이 없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끝난 프로젝트임에도 압도적인 성과 덕분에 신화처럼 전해지는 성공담이 있는가 하면, 신입사원이 회의실에서 던진 한 문장, 사장님의 엉뚱한 농담, 회식 자리에서의 실수담도 버젓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두고 ‘아직도 회자된다’고 표현합니다.
‘회자된다’는 말을 들으면, 막연히 ‘돌아다닐 회(回)’ 자를 떠올리며 어떤 이야기가 이리저리 떠돈다는 뜻으로 짐작하곤 합니다. 말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퍼진다는 이미지가 그럴듯하게 겹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회자’는 뜻밖에도 ‘회 회(膾)’와 ‘구울 자(炙)’로 이루어진 한자어입니다. 단어가 유래된 고대 사회의 여건에 비추어 보면 날것으로 먹는 신선한 회와 불에 구운 고기는 아주 귀한 음식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은 『맹자』의 「진심」 편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구에 회자된다[人口膾炙]’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쉽게 말하는 ‘씹힌다’라는 뜻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칭찬을 받으며’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흉보거나 부정적인 상황에 ‘회자’를 붙이는 건 잘못된 쓰임입니다. 큰 잔치나 제삿날 맛보았던 회와 구운 고기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말하듯, 누군가의 명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회자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입은 참 묘한 자리입니다.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소화기관이자, 말을 내놓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람에 대한 평가나 말 자체를 설명할 때조차 음식의 언어를 빌려 오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를테면 말을 씹고, 삼키고, 뱉고, 토하고, 우물거린다고 합니다. 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간을 보고 싱겁다거나, 짜다거나, 달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누군가를 안주로 술상에 올리기도 합니다. 사실 회자의 반대편에 서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음식은 잘 씹어야 소화가 잘되지만, 사람을 잘못 ‘씹으면’ 인간관계는 이내 소화 불량에 이르기 쉽습니다. 회자는 칭송의 의미를 담아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가는 분명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만찬이 끝난 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안줏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해집니다.
잇몸 약 광고의 카피처럼 오래도록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도 행복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입안의 말과 음식은 한 번 밖으로 내놓는 순간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뱉은 한마디 말은 누군가에게 하나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 말이 되어 천 리를 떠돌며 여러 사람의 입과 입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 됩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