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대인배(大人輩)

고전에는 없지만, 고전에 기대어 선 한자어

by 인사이트뱅크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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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대인배’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접합니다. 그런데 이즈음의 다른 신조어와는 달리 듣는 순간 그 의미가 단박에 전해집니다.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이 대인배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엉터리 국어’라는 전제와 함께 ‘대인배(大人輩)’에서 ‘배(輩)’ 자는 본래 무리나 패거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여기에 ‘대인(大人)’을 붙이는 것이 과연 어울리느냐는 대통령의 문제 제기였습니다.

대통령의 말처럼 ‘소인배(小人輩)’나 ‘시정잡배(市井雜輩)’와 같이 특정 집단을 낮추어 부를 때에도 배(輩)를 사용하지만, 사실 ‘무리’를 뜻하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으로도 사용합니다. 선배(先輩)나 후배(後輩), 동년배(同年輩)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샘에서는 대인배를 ‘마음 씀씀이가 넓고 관대한 사람, 또는 그런 무리’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 ‘대인’은 말과 행실이 바르고 점잖으며 덕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배(輩)’는 ‘불량배’, ‘폭력배’, ‘소인배’와 같이 주로 부정적인 명사에 붙는 말이므로 함께 어울려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내용을 참고표(※)를 달아 추가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우리말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기준이라면, 우리말샘은 ‘사람들이 이렇게 쓰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현실에서 널리 쓰는 우리말의 현재 진행형을 기록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정 이력을 그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국 고전에는 ‘대인배’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국어사전에 등재된 ‘소인배’ 역시 고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개념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고전에서는 ‘소인(小人)’과 ‘군자(君子)’가 분명한 대척점을 이루며 등장할 뿐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분명하게 대비합니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사사로이 뭉치지 않고, 소인은 사사로이 뭉치되 두루 어울리지 못한다(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고 했습니다. 그리고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지만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소인은 신분이 낮거나 어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좁고 사사로운 이익에 매이는 인간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소인의 반대편에는 늘 군자가 우뚝 서 있습니다. 중국 고전에서 소인의 상대적 개념은 바로 군자입니다.

군자에 비해 빈도수는 적지만 『맹자』를 보면 소인의 상대적 개념으로 대인(大人)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큰 것을 따르면 대인이 되고, 작은 것을 따르면 소인이 된다(從其大體為大人 從其小體為小人)’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인(大人)’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던 존칭이나 덩치 큰 어른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큰 줄기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눈앞의 감정과 욕망보다 도리와 방향을 따르는 존재이지요. 이처럼 고전 속에는 군자와 더불어 대인이라는 이상적 인간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에 ‘소인배’가 8번, ‘대인배’가 단 한 번 등장합니다. ‘대인배’는 인조가 명나라 황제 주변의 관리들을 일컬으며 고마움을 전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빈도를 고려할 때 일반화된 표현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인배’라는 표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소인’에 무리를 뜻하는 ‘배(輩)’를 붙여 ‘소인배’라 하듯, ‘대인’에 ‘배’를 덧붙여 ‘대인배’라 한 셈이니 구조만 놓고 보면 크게 무리가 될 것도 없습니다. 특히 ‘소인배’가 이미 일상어로 굳어진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군자’ 대신 ‘대인배’를 사용하는 것은 언중(言衆)의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군자’가 지닌 다소 고전적인 뉘앙스에 비해 ‘대인배’가 조금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맹자가 말한 ‘대인(大人)’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이 표현은 단순한 신조어를 넘어 점차 의미를 굳혀 가는 단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 순화 차원에서 대인배라는 조어를 방송과 같은 공공언어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결국 언어는 옳고 그름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말은 쓰이는 자리에서 살아남고,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의미를 얻습니다. ‘대인배’라는 표현 또한 어법의 잣대만으로 재단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며 앞으로의 동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의 뿌리를 헤아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어는 규범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자리를 잡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쓰임이며 그 쓰임이 곧 언어의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로 공론화된 언어 순화와 한자 교육의 흐름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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