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기간의 학교는 거대한 잠수함 같다. 외부와 차단된 채 오로지 성적이라는 수압을 견뎌내야 하는 공간. 교실 창가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은 창백하고, 복도를 지나는 발걸음 소리조차 평소보다 무겁게 가라앉는다.
이 시기가 되면 쭈뼛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 혹시 시험 보다가 정말, 정말 너무 아파서 못 보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인정점수라는 건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그 아이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나는 십수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앉아 있던 열일곱 살의 나를 본다. 나 역시 그들처럼, 내 실력이 세상에 탄로 나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정당하게 아픈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신입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선서를 했다. 전교생의 시선과 선생님들의 기대 어린 눈빛이 내 등에 화살처럼 꽂혔다.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라벨은 달콤했지만, 그 실체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나의 중학교 성적은 약간의 운, 그리고 남들이 등한시하는 과목에 매달려 점수를 끌어모은 일종의 '전략적 뻥튀기'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첫 3월 모의고사가 다가올수록 공포는 실체화되었다. 중학교 성적표라는 가면에 가려진 내 진짜 실력이 전국 단위의 시험지 앞에서 발가벗겨질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기대가 높을수록 추락할 때의 소음은 더 클 것이고, 그 소음이 내 인생을 망칠 것만 같았다.
나는 비겁한 계획을 세웠다. 시험을 잘 볼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험을 보지 않을 정당한 사유를 만들자. 그때부터 나의 기도는 바뀌었다. “제발 시험 당일에 시험을 못 볼 정도로 아프게 해 주세요.”
시험 전날, 나는 일부러 얇은 옷을 입고 베란다 창문을 연 채 찬바람을 맞았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미신들을 떠올리며 몸의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나의 젊은 육체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시험 당일 아침, 거울 속 내 모습은 약간 피곤해 보일 뿐, 누가 봐도 등교하기에 충분한 상태였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가방을 멨다. 교문을 통과하는 발걸음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무거웠다.
운명의 1교시, 언어 영역 시험지가 배부되었다. 종소리와 함께 일제히 시험지를 넘기는 ‘촤르륵’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그런데 그때,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 그것은 내 간절한 부정(否定)의 에너지가 불러온 저주였다.
거짓말처럼 아랫배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머릿속에서는 수천 개의 바늘이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손이 떨려 펜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감독관 선생님이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고 황급히 나를 보건실로 보냈다.
보건실 침대에 눕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살았다. 이제 이 지옥 같은 시험에서 도망칠 수 있어.’
일시적인 통증이었는지 침대의 온기 덕분인지, 보건실에 누워 있다 보니 몸의 상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번 고비를 넘긴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 딱 10분 전이었다. 보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그분의 손에는 아직 마킹되지 않은 빳빳한 답안지와 문제지가 들려 있었다.
“정신 좀 드니? 보건 선생님께 들어보니 좀 괜찮아졌다며. 학교에 등교를 했으면 시험은 마무리해야지. 자, 10분 남았지만 얼른 풀어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80분 동안 사투를 벌여야 할 언어 영역 지문들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60분 넘게 통증과 싸우느라 날려버린 시간, 나에게 남은 건 단 10분뿐이었다. 지문을 읽는 것은 이미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보이지도 않는 문항들에 기계적으로 답안지를 채워 나갔다. 그것은 실력을 보여주는 시험이 아니라, 처절한 패배를 기록하는 마킹이었다.
성적표가 나오던 날, 예상대로 내 성적은 처참했다. 교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와, 1등 성적 봤어? 나보다 한참 밑이야. 신입생 대표라고 해서 대단할 줄 알았더니 순 거품이었네.”
“오빠 내가 우리 반 1등보다 시험을 훨씬 잘 봤다니까.”
억울함에 목이 메었다. “내가 아파서 그랬어! 제대로 봤으면 너희보다 훨씬 잘 봤을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어떤 변명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상은 ‘아파서 10분 만에 마킹했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종이 위에 찍힌 숫자만이 나를 증명할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절대로 시험 때 아프기를 바라는 바보 같은 기도는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말과 생각에는 힘이 있어서,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서서 인정점수를 묻는 아이에게, 나는 이 오래된 흑역사를 꺼내어 보여줬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해준다.
“인정점수는 생각보다 높지 않아. 특히 너처럼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손해란다. 국민평균 5등급이라고 하잖아. 5등급에 해당하는 점수를 보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피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나중에 진짜 넘어야 할 산 앞에서 자꾸 도망치고 싶어질 거야. 실수도 자꾸 해 버릇해야 안 하게 되는 거란다.”
우리의 뇌는 용량이 정해진 컴퓨터와 같다. 뇌의 80%를 ‘못 보면 어떡하지’, ‘아프면 어떨까’ 하는 걱정에 써버리면 정작 문제를 푸는 데 쓸 수 있는 용량은 20%밖에 남지 않는다. 긴장하면 아는 문제도 안 풀리는 법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딱 한 가지만 주문한다.
“잘 보려고 하지 마. 그건 욕심이야. 딱 네가 공부한 만큼만, 억울하지 않을 만큼만 점수를 받아오겠다고 마음먹어봐.”
만물의 근원은 결국 마음의 평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잘 보려는 마음이 지나치면 도리어 화가 된다. 오늘도 시험지와 마주할 나의 제자들이, 아프기를 기도하는 대신 자신의 실력을 담담히 마주하는 용기를 내길 응원해 본다. 설령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지라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마킹을 마친 그 손가락의 감각이 결국 우리의 아이들을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