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간의 교실은 예민한 파동으로 가득 차 있다.
아이들의 성적표에 찍힐 숫자 하나에 인생의 성패가 갈릴 것처럼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그때, 우리 반 학생 하나가 울먹이는 얼굴로 교탁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저 이번에 아는 문제 두 개나 틀려서 1등급 날아갔어요. 그냥 자퇴할래요. 다 끝났어요.”
아이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고작 마킹 실수 혹은 짧은 착각으로 빚어진 결과가 아이에게는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졌으리라. 나는 펜을 내려놓고 아이의 젖은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퀴퀴하고도 아픈 기억 한 조각을 꺼내 아이 앞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괜찮아. 선생님은 과학 시험지 뒷면이 아예 인쇄 안 된 것도 모르고 꿀잠 자다가 6문제를 통째로 날린 적도 있는걸. 그때 선생님 등수는 어땠을 것 같니?”
아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완벽해 보이는 선생에게도 그런 ‘멍청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나의 시간은 순식간에 수십 년 전, 그 서늘했던 교실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시절 학교는 거대한 성적 산출기였다.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구호는 폭력적인 체벌조차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은 운동장에 있는 철봉을 보시며 무심하게 뱉으셨다. “여기는 지방이라 일자리도 없는데, 공부마저 못하면 너희는 나중에 뭐 해 먹고살래?” 그 말은 가르침이라기보다 선고에 가까웠다.
가장 지독했던 건 담임 선생님의 ‘이름 부르기’였다. 선생님은 반에서 딱 3등까지만 이름을 불러주셨다. 1등 ㅁㅁ, 2등 ㅇㅇ, 3등 XX. 그 뒤로 밀려난 나머지 30명의 아이들은 그저 ‘야’ 혹은 ‘너’라는 무채색의 대명사로 불렸다. 어느 날, 도저히 참지 못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도 이름이 있어요.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돌아온 대답은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반에서 3등 넘어가는 놈들은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어. 이름으로 불리고 싶으면 3등 안에 들어와.”
그날 이후, 나에게 공부는 배움이 아니라 ‘이름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 되었다. 복도에 쓰레기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반 전체가 단체 기압을 받던 시절이었지만, 우리 반 1등 만은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열외 되던 기괴한 교실. 나는 그 불공평한 질서 안에서 아득바득 이를 갈며 펜을 쥐었다.
담임 선생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죽으면 평생 자는 게 잠이다. 시험 기간에 잠 처자지 말고 공부해. 하루 이틀 안 잔다고 안 죽어.”
그 말을 종교처럼 믿었던 나는 시험 전날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퀭한 눈과 해롱거리는 정신으로 과학 시험지를 받아 들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문제가 너무나 쉬웠던 것이다. 거침없이 답을 써 내려갔고, 마지막 번호까지 깔끔히 다 풀고 더 이상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100점을 확신하며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달콤한 승리감에 취해 잠든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의 내리막길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시험 종료 종이 울리고 친구들과 답을 맞혀보던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야, 28번 문제 진짜 어렵지 않았냐?”
“뭐? 28번 문제가 있었어? 25번이 끝이 아니야?”
내 시험지 뒷면은 깨끗한 백지였다. 인쇄 사고였다. 부랴부랴 과학 선생님께 달려가 울며불며 매달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원칙론이었다.
“시험 중에 말했어야지. 이미 다 끝난 뒤에 가져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청천벽력이었다. 한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는 상위권 다툼에서 6문제를 날린다는 건, 쌓아온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다. 성적은 수직 낙하했고,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건 그 이후의 소문들이었다. 과학 선생님은 수업 들어가는 반마다 내 사례를 전파하셨다.
“너희는 어느 반 누구처럼 뒷장 인쇄 안 된 것도 모르고 잠 처 자다가 망하지 마라.”
순식간에 나는 ‘뒷장 날린 애’가 되어 전교생의 구경거리가 됐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던 그 묘한 시선들.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 그토록 발버둥 쳤건만, 나는 결국 이름 대신 ‘실수’로 기억되는 원숭이가 되어버렸다.
눈앞에서 울먹이는 제자에게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아주 천천히 들려주었다.
“실수도 실력이라는 말, 참 잔인하지? 나도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어. 그런데 어쩌겠니, 이미 끝나버린 시험인걸. 지금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야. 지나간 시험지에 매달려 우는 대신, 다음 시험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실수는 누구나 한다. 사람은 원래 바보 같은 면이 강해서, 직접 뜨거운 맛을 보기 전까지는 남의 충고를 소설책 속 문장 한 줄 정도로만 여긴다. 내가 그 뼈아픈 ‘인쇄 사고’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그저 뻔한 위로만 건네는 선생이었을 것이다.
“지금 네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대입 전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단다. 어떤 대학은 네가 가장 잘 본 과목들만 골라보기도 해. 그러니 오늘 한 번의 실수로 네 인생 전체를 ‘오답’이라고 단정 짓지 마.”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실수 없는 매끈한 인생이겠지만, 그런 인생이 과연 재미있을까 싶다.
우리 반 아이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삶이 다이나믹해요?”
글쎄, 나도 가늘고 평온하게 살고 싶지만 인생은 자꾸만 내게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을 던져줬다. 아마도 그건, 내가 만날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해줄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주려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오늘 시험을 망치고 자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시험지 뒷면은 비었을지언정, 당신의 인생 뒷면은 여전히 당신만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귀한 문장들로 가득 채워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