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 비성수기를 통과하는 법

by yuri

“선생님, 저도 남친 만들고 싶은데 없어요. 아마 제가 못생겨서 그렇겠죠?”


종례를 마치고 반 청소를 하느라 남아있던 몇 명의 학생들마저 다 보낸 뒤였다. 텅 빈 교실, 교탁 앞으로 다가온 아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섞인 투정보다 짙은 자기혐오가 배어 있었다. 한창 예쁘고 싶을 나이에 스스로를 ‘못생김’이라는 틀 안에 가두고 한숨짓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그 얼굴 위로, 잊고 지냈던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아니, 나는 한술 더 떠 스스로를 가장 추한 모습으로 방치하는 데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당시 나에게는 꽤나 굳건한 신앙이 하나 있었다. 바로 ‘못생김이 폭발해야 공부력이 상승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공부는 모름지기 치열해야 하고, 그 치열함은 겉모습의 초라함으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 규율도 엄격했다. 선생님들은 클렌징티슈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의 화장을 강제로 지우셨고, 입술 보호제나 선크림조차 투명한 것 외에는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속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방치함으로써 오로지 성적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고 싶어 했다.


나의 전투복은 늘 한결같았다. 앞머리는 똑딱핀 세 개를 나란히 꽂아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넘겼고, 코끝에는 늘 두꺼운 뿔테 안경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목이 늘어나 후줄근해진 티셔츠에 무용과 학생들이 즐겨 입던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복도를 휘저었다. 피부는 여드름 때문에 늘 얼룩덜룩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붓는 체질인 탓에 날이 갈수록 몸집은 부해졌다. 게다가 그 시절 나의 유일한 해방구는 학교 매점이었다. 매일같이 치즈케이크를 한 개씩, 마음이 무너지는 날엔 세 개씩이나 해치웠으니 ‘못생김의 임계점’을 넘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건 나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무례한 시선이었다. 우리 반에는 소위 ‘여미새(여자를 매우 좋아하는 남자)’라 불리던 남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내게 이런 말을 뱉었다. “어차피 너는 못생겨서 결혼 못 할 텐데, 그냥 내가 해줄게. 대신 돈은 네가 다 벌어와. 나는 집에서 놀고먹을 테니까.” 지금 생각하면 실소만 나오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였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너랑 결혼하려고 이 고생하며 공부하는 줄 아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스스로를 ‘수박이 될 수 없는 호박’이라 단정 짓고 있었기에 그저 침묵으로 비참함을 견뎌낼 뿐이었다.


졸업 앨범 촬영 날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평소 화장하는 아이들을 그토록 꾸짖으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오히려 나를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너 정말 이대로 찍을 거니? 비비크림이라도 좀 바르고 오지. 아니면 선크림이라도….” 선생님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찍을래요.”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인색했을까. 먼지 쌓인 연습실 한구석에서 공부에 파묻혀 있을 때, 평소 소품으로만 생각했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리며 들려온 말도 기억난다. “가서 운동장이라도 좀 뛰어라. 밥 먹고 앉아만 있으면 오리궁뎅이 된다.” 그런 투박한 걱정들조차 당시의 내게는 암흑 같은 터널 속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던 고등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나름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여유로운 성적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가 지나가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강박적인 폭식 습관이 사라졌고, 얼굴을 뒤덮었던 여드름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날, 우연히 고등학교 선배를 연습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름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던 그 선배는 달라진 나를 보고 지나가면서 툭 한마디를 던졌다. “너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다니지 그랬냐. 그랬으면 내가 사귀었을 텐데.” 고맙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그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그렇게 달라진 걸까?’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진 것도 이유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표정’과 ‘분위기’였다. 늘 쫓기듯 치열하게 사느라 찡그린 채 굳어있던 얼굴이, 비로소 웃음을 되찾은 것이다. 오죽하면 졸업할 때 담임 선생님께서 “너도 웃을 줄 아는구나”라고 하셨을까. 만나기 싫은 사람과는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자 내 안의 너그러움이 분위기가 되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나는 아이에게 작게 속삭여주었다. “지금은 네 인생에서 미모가 잠시 ‘비성수기’인 시절일 뿐이야. 선생님도 한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줄 알았거든.”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아니에요! 선생님 지금 진짜 예쁘신데요?”라며 끼어든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 마음이 예뻐서 선생님도 예쁘게 보이는 거야. 그런데 선생님도 말이야, 나이 먹어보니 길에서 번호도 따여보고 공개 고백도 다 받아봤어. 남자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나중에 다 할 수 있어. 선생님도 대학 갈 때까지는 모태솔로였다고 했잖아. 그래도 지금 잘만 살고 있지? 그러니까 조급해할 필요 없어.”


사람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지점은 이목구비의 황금비율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풍기는 고유한 온도, 편안한 표정,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접하고, 얼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 비성수기를 지나고 있는 나의 제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거울 속의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너의 전성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며, 마음이 환해지는 날 너의 얼굴에는 세상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근사한 빛이 내려앉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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