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시작 전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노트북에서 "카톡" 하는 알림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우리 반의 이쁜 학생이었다. 평소 시크하긴 해도 맡은 바 역할은 늘 착실하게 해내는, 내게는 참 믿음직한 아이다.
"선생님, 조회 시간에 여쭤보려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려서 카톡으로 여쭤봅니다. 시험 관련 이의제기는 언제까지 가능한가요?"
질문을 읽는 순간, 잠시 손가락이 멈칫했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한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이런 질문은 나조차 처음이었다. 보통 이의제기란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 결과에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와 묻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시험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마감 기한을 걱정하는 그 마음 안에는, 대체 얼마나 커다란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도 학교 규정을 정확히 다시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교무부 성적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니 "시험 종료일로부터 3일 이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 내용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더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저는 시험이 다 끝날 때까지 채점을 절대 안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시험은 4일이나 보잖아요. 첫날 본 과목을 마지막 날 집에 가서 채점하면 이미 3일이 지나버리는데, 그럼 저는 어떡하죠? 만약 그때 오류를 발견하면 저는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영영 놓치는 건가요?"
아이의 문장마다 맺혀 있는 불안의 무게가 내 마음 위로도 툭툭 떨어졌다. 시험 직전 주까지도 아이는 "혹시 저만 이 문제가 잘못된 줄 알고 있는데, 이의제기를 못 하면 어떡하죠?"라는 고민을 안고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전전긍긍하는 그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기억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고등학교 국어 시험지 한구석에 쳐진 빗금을 보며 확신했었다. 이건 명백한 출제 오류라고. 정확히 어떤 문제였는지는 흐릿하지만, 텍스트 안의 논리로는 정답이 하나일지 몰라도 다른 학문의 관점을 빌려오면 분명 복수 정답의 소지가 있는 문제였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국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시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노신사였다. 내가 다가가 "선생님, 이 문제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요..."라고 입을 떼자마자, 선생님의 시선은 내 얼굴이 아닌 벽면의 시계로 향했다. 내가 준비해 온 논리적 근거, 복수 정답의 정당성을 설명할 기회조차 주시지 않았다.
"시험문제 이상하다고 찾아온 학생은 학교 전체에서 너 하나뿐이야. 그러니 이 문제는 이상 없다. 돌아가."
그 짧고 건조한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 제 말을 한 번만 들어봐 주세요. 제 생각에는요..." 하지만 돌아온 말은 "안 들리니? 돌아가"라는 차가운 외면뿐이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나오던 그 복도는 왜 그리도 길고 차갑게 느껴졌을까. 그때는 그랬다. 질문하는 학생은 '반항아'가 되고, 오류를 지적하는 학생은 '피곤한 아이'로 치부되던 시대. 근처 학교에서는 '옳은 것을 고르시오'라고 출제해 놓고 정답지에는 답을 두 개 적어놓아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답이 여러 개면 알아서 여러 개를 골랐어야지!"라며 호통을 쳤다는 말도 안 되는 실화가 무용담처럼 떠돌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그 당시에는 참 많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았다. 시험지 위에서 길을 잃을까 봐 미리부터 겁을 먹은 작은 존재. 나는 아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과거의 나에게는 끝내 허락되지 않았던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다.
"시험 4일째쯤 되면 말이야, 만약 1일 차 과목에 정말 오류가 있다면 우리 반 1등이 이미 이의제기를 했을 거야. 혹시 우리 반 1등이 놓쳤더라도 전교 1등은 발견했겠지. 하지만 정말, 만약의 확률로 너만 그 오류를 알게 되었다면, 그리고 너의 생각이 타당하다면 선생님이 약속할게."
나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선생님이 교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읍소를 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학업성적관리 위원회를 열어줄 거야. 이미 기간이 지났다고 해도, 그 문제가 정말로 잘못됐다면 오류를 잡아야지. 열심히 공부했는데 억울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 너는 기간 걱정, 오류 걱정 말고 오직 시험에만 집중해."
내 호기로운 선언에 아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감동과 걱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선생님 잘못되시는 것 아니에요?"
아이의 순수한 걱정에 참아왔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짐짓 가벼운 말투로 대꾸했다. "잘못되어 봐야 짤리는 것밖에 더 하겠니?" "안 돼요! 그건 절대로 안 돼요. 그냥 제가 가만히 있을게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단단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선생님 걱정은 하지 마. 시험 잘 볼 생각만 해. 잘못되면 책임지라고, 너희 방패가 되어주라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니까."
교실 문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은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그 뒷모습 위로 십수 년 전, 터덜터덜 교무실을 나오던 나의 옛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 나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한 명쯤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 나의 국어 선생님은 모르셨을 것이다. 당신의 차가운 거절이 누군가에게는 깊은 흉터가 되었지만, 그 흉터를 간직한 아이가 자라나 이제는 제자를 위해 기꺼이 교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갈 준비가 된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완벽한 시험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완전한 시험지 위에서도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단단한 스승이 되고 싶다. 비로소 나도 누군가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조금은 노련하고 듬직한 선생님이 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면서도 따스해지는 그런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