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에도 학교에 가는 사람
우리 엄마는 요즘 새벽마다 바쁘다.
문해학교에 가려면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며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팔십이 넘어서도 ‘등교’라는 단어를
스스로의 일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어제는 1호선이 늦게 왔다고 했다.
“지하철이 안와서 추운데서 한참을 기다렸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두 손등의 짙어진 검버섯이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엄마 힘들지 않아?”
내가 물으면,
엄마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뭣이 힘들어. 재미진디.”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나는 왠지 조금 부끄러워진다.
어릴 때 나는 학교 가기 싫으면
추운 날을 핑계 삼아 땡땡이를 치던 아이였다.
차가운 바람이 싫으면 그냥 돌아섰고,
지금도 다르지 않아
아침운동은 조금만 춥다 싶으면 곧잘 미룬다.
그런데 엄마는 팔십이 넘은 몸으로
그 추위를 통과해 학교에 간다.
늦는 지하철을 묵묵히 기다리고,
기억보다 더딘 손으로 연필을 잡는다.
참 다르고, 참 닮고 싶다.
오늘도 나는 엄마의 숙제를 봐준다.
“내가 망령이 났나. 자꾸 틀리게 쓰네…”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끝까지 해낸다.
그 모습이 어릴 적 혼자 숙제하던 내 모습과
이상하게 겹쳐 보인다.
그때의 나는 모르는 문제 앞에서
울컥하던 아이였고,
엄마는 내 곁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오래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엄마도 그 시절
자기 삶의 숙제를 감당하느라
너무 벅찼다는 걸.
엄마가 작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니 생일이라고 내가 쪼끔 넣었다.
니 사고 싶은 거 사라.”
말은 무심한 듯하지만
봉투를 건네는 손끝은 따뜻했다.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팔십 넘은 엄마가
여전히 나를 챙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부엌에서는 동그랑땡을 굽는 냄새가 났다.
노릇한 동그랑땡과
반짝하게 잘 익은 감 몇개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것도 챙겨 가라. 니 좋아하잖아.”
엄마는 이제 학생이 되었고
나는 엄마 숙제를 봐주는 사람이지만,
정작 잘 챙김을 받는 쪽은 언제나 나다.
엄마는 글씨를 다시 쓰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읽어주고,
우리는 한 글자씩 같이 나아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어릴 땐 내가 늘 엄마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엄마가 내 생일을 먼저 기억하고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돌봄’이라는 말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나이와 역할을 몇 번씩 바꿔 가며
서로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엄마는 동그랑땡을 싸주고,
감을 챙겨주고,
촌지 봉투를 쥐여준다.
팔순의 학생이지만
여전히 나의 가장 든든한 부모다.
나는 엄마의 숙제를 봐주러 온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숙제를 배우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오래된 사랑의 모양을
나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추위를 핑계삼아 미룬
아침운동을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팔순엄마도 하는데
내가 못해낼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