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미술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동반자이자 협력자이다!
대폭발을 의미하는 빅뱅(Bic Bang)은 더 이상
과학계에서만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제2세대 대표 남자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며,
유튜브에 그 많은 과학 유튜버들의 영상 중
빅뱅을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는 크리에이터를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빅뱅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과학, 철학, 인문학 콘텐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굳이 과학전문 잡지 뉴턴(Newton)을 본 적도,
아시모프(Issac Asimov, 1920-1992)의 저서를 읽어
본 적이 없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탄생시킨 사건이 빅뱅이라는 건 일반 상식이 되었다.
빅뱅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이 우주 한 구석 창백한 푸른 점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우리 인류가 어디서 온 존재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종착지 이기도 하다.
우리는 빅뱅 이후 형성된 물질들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진 별의, 더 나아가 빅뱅이
발생시킨 찌꺼기들의 집합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8억 년 전, 아주 작은 점의
강력한 대폭발, 빅뱅으로부터 현재의 우주가
탄생했다는 빅뱅 우주론이 일반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는 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원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만
그런 본능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관심이 높고 자신의 내부 세계를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표출하기를 원하고
그러한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
일명 예술가들에게는 그 본능이 더욱 강할 것이다.
당연히 우주나 별, 천체, 그리고 빅뱅은
예술가들에게도 상당한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일 것이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코넬리아 파커(Cornelia Parker, 1956-)는
누구보다 이 관심을 적극적으로 예술로서 승화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다.
그는 천체물리학이나 양자역학에서 제시된 개념들을
미술로 표현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영국의 테이트브리튼(Tate Britain)에는 그녀의 대표작인
<차가운 암흑 물질: 분해된 뷰
Cold Black Matter: an Exploded View>가
보존되어 있다. 파커는 평범한 헛간에 매일
여러 가지 일상 용품들을 가져다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잡동사니로 메꿔진 헛간을 보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파커는
군인 출신 폭발물 전문가에게 헛간의 폭발을 의뢰한다.
헛간은 안전하게 폭파되었고 파커는
폭파된 헛간의 잔해들을 일일이 다시 모은 후
줄에 매달고 그 가운데에는 전구를 설치하였다.
코넬리아 파커는 이 작품이 설치될 공간을 일부러
어둡게 연출하고 가운데 위치한 작은 전구의 빛에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설계하였다.
전구 주변에 매달린 폭발의 잔해물들은
전구 빛을 받아 그림자를 형성하고
그 모습 자체로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설치미술은 한 날 베테랑 군인에 의하여 자행된
폭발에 대한 증언이다. 하지만 파커는 여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는 이 설치 작품을
<차가운 암흑 물질>이라고 명명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차가운 암흑 물질>의 아이디어는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내용이었고,
나는 측정할 수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한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빅뱅을 상징하는 폭발을 담았다.
이 작품은 폭발을 식으로 표현하고, 분류하고,
분명하게 정의하여 구조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이 작품은 그저 한 괴짜 미술가가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마구간의 폭발을 의뢰한 개인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넘어 우주적 사건에 관한 미술가로서의
재해석이자 과학이론에게 보내는
찬사(applause)이자 송가(ode)이다.
과학계에서는 우주 탄생 즉, 빅뱅을
복잡한 수학 연산으로 표현해 낸다.
프리드만-르메트르-로버트슨-워커(FLRW) 메트릭,
허블 법칙, 혹은 열역학적 공식으로.
이들은 수학의 각종 수식과 연산, 복잡한 기호들로
우주 탄생의 순간을 표현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도구가 수학이기에 그들은
빅뱅을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수단을
사용하여 표현한 거다.
그렇다면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튜브 세상 속
과학 크리에이터들은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빅뱅의 순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텍스트나 언어(verbal)를 주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아마 이런 방식이 될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미술가는 시각미술에 특화된 전문가로서,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을만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각적 수단들을 총 동원하여
빅뱅이라는 사건을 표현해 낼 것이다.
대폭발로 알려진 빅뱅에 대해 파커는 헛간이라는
실제 물리적 공간을 생각해 냈고 그 안에 각종 잡동사니를
채워 넣은 후 폭파하는, 일종의
행위예술(performance)을 실시하였다.
빅뱅에 대한 미술가 코넬리아 파커의 예술적 행위는
실제 잡다한 물질들로 채어 넣은 공간을 폭발시키고
그 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할 수도 있었을 거다.
대부분의 행위예술들이 그런 것처럼.
그녀는 일회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가운데 밝은 빛이 빛나는 전구를 설치하고
그 주변으로 폭발 후 수거된 잔해물들을 매달아
작지만 밝은 빛을 내뿜는 강력한 힘을 지닌 작은 점으로부터
물질들이 빠르게 흩어지는 순간을 재구성하였다.
파커의 설치미술은 빅뱅 우주론에 영감을 받았지만
과학자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그렇다고
글 쓰는 작가도 아닌 오직 미술가인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빅뱅을 미술로서 표현해 냈다.
파커가 과학 아이디어를 미술의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지속된다.
<아인슈타인의 추상 Einstein’s Abstracts>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에 대한
오마쥬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하여
현대물리학, 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류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으로서
과학의 아이콘 그 자체이다.
파커는 1931년 옥스퍼드 과학사 박물관
(History of Science Museum)에서 아인슈타인이
강의했던 칠판의 분필로 쓰인 글씨를
최대로 확대하여 사진으로 찍었고
이를 미술 작품으로 발표하였다. 파커는 과학이
미술의 뮤즈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아니 역사 시대 이래로 인류는
한시도 과학과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 여러 분들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속 유튜브, 인스타그램이나
X 등의 소셜미디어,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등의
배달 앱들은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보는 TV, 햇반을 돌려먹는 전자레인지,
직장에 출근하기 위하여 타는 자가용 혹은 버스,
지하철의 대중교통, 그도 아니라면 따릉이와 같은 자전거,
심지어 우리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와 청비지도
과학의 산물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티셔츠, 속옷, 양말, 주말마다 한강에서
신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는
지금에는 아무것도 아닐, 오늘날의 고등 과학의 눈으로는
과학과는 상관없는 것들로 보이겠지만
이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공장과 자동화 시스템,
그리고 자전거의 페달 및 바퀴의 크기 등은
모두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인간이 과학을 진보시켰지만 도리어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과학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지구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도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집착과 해탈, 열반을 이야기하는
특정 종교에서도 과학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불법을 전하는 불교의 스님들 중에는
과학 그중에서도 천체물리학에 관심이 높으신
스님들이 매우 많다. 2,500년 전 샤카무니 붓다의
가르침이 오늘날 하나하나 드러나는 우주의 진실과
양자역학의 발견과 놀랍도록 유사하기 때문이다.
불교 승려들에게 과학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증거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보살행을 실현하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고 나도 붓다가 되는 게
불교 수도승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과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아마 스마트폰이나 최신 IT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전자기기의 작동 원리에 흥미를 느껴
전자공학 쪽에 더욱 관심이 높을 것이다.
컴퓨터가 관심이 있다면 컴퓨터 공학에,
만약 자연이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굳이 과학자가 아니고 과학계에 몸을 담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과학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미술가, 예술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와 미술가, 예술가들이 다른 건 그걸
미술 혹은 예술이라는 하나의 결과물로서 표현해 내고
대중에게 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일 뿐이다.
이안 블래치포드 경(Sir Ian Blatchford)과
틸리 블라이스(Tilly Blyth)가 공동으로 집필한
<혁신의 뿌리 The Art of Innovation>는
미술과 과학이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은
20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개 챕터들은
파트 1의 “낭만의 시대”, 파트 2의 “열정의 시대”와
파트 3의 “모호성의 시대”에 배치된다.
인간과 과학과의 관계는 인류가 역사 시대에 돌입한 시대,
아니 간단한 돌도끼를 만들고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것 역시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할 때,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블래치포드 경과 블라이스의 책은 이 무구한
인간과 과학의 공존의 역사를 전부 다루는 대신
인간의 이성과 무한한 진보의 가능성을 신봉한
계몽주의(Enlightenment)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그 여정은 21세기에 이르러 끝이 난다.
이 책을 통해서 과학과 예술과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예술가와 작품들을 처음 접할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석사 재학시절,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교수님이 "18세기 미술 세미나"를 진행하실 때
흥미롭게 소개해주셨던 조셉 라이트 더비
(Joseph Wright of Derby, 1734-1797)의
<태양계 모형에 대하여 강의하는 철학자
A Philosopher Lecturing with a
Mechanical Planetary>(1766)나
<공기 펌프에 갇힌 새에 대한 실험
An Experiment on a Bird in the Air Pump>(1768)
같이 한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그림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 당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과학이 예술에 영감을 미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하였지만
과학과 예술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과학자들의 탐구와 실증연구를
자극하고 영화나 소설 속 묘사된 미래 사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하여 과학자들은
과학 및 기술 발전에 매진하였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이성, 예술은 감성의 산물로 여겨진다.
인간은 오랫동안 이성과 감성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고
이성이 감성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믿음이 잘못되었고
이성과 감성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이 둘이 적절한 공존과 조화가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은
인류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협력해야 하는 동지이고 협력자여야만 한다.
블래치포드 경과 블라이스의 <예술의 뿌리>의 저술 목적은
20개의 예술과 과학 기술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한
독자의 앎의 수준이 높아지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과학과 예술이 영감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 동반자의 관계였으며 인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걸 독자들이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데 있다.
예술과 과학의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온 혹은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예술 작품이나 아름다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