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그 소비를 멈추시오!!!
인간은 소비하는 존재이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은 남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소비자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진 정체성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고, 거의 대부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며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이후에는 장례 서비스를 소비하며 이생에서의 삶의 흔적을 지운다. 인간의 인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는 소비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비는 인간의 보편적인 행위인가? 소비(consumption)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기초적인 ‘생리 욕구’에서 ‘안전 욕구’, ‘애정·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를 비롯하여 최종적으로는 가장 고차원적인 ‘자아실현 욕구’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다. 먹을 것을 갈구하거나 위대한 철학자가 되겠다는 것은 욕구의 관점에서 보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을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 잠을 자기 위해 필요한 거주지, 추위를 막기 위해 걸치는 옷이나 철학 공부를 위해 읽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이나 서로 다른 유형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에 불과하다. 소비하는 대상만 다를 뿐 결국 우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구상에 등장할 때부터 비록 생리 욕구에 한정되지만 소비 활동을 해 왔다.
J.B. 매키넌(J.B. Mackinnon, 1970-)은 아프리카의 칼라하리(Kalahari) 사막에 사는 원시 부족인 주콴시 부족을 관찰하며 이를 확인했다. 주콴시 족은 사냥이나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 비교적 편안하게 잠을 자고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거주지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신체를 가린다.
하지만 매키넌은 이들의 소비가 21세기 현대인의 소비와는 다름을 발견하였다. 주콴시 족 사회에서 모든 것은 가족 혹은 부족의 공동의 소유이다. 주콴시 부족에게는 사유재산이 없으며 사유재산의 개념조차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지 않는다. 주콴시 족이 살아가는 칼라하리 사막은 예상보다 먹을 것이 풍족한 환경이다. 이들은 원한다면 필요 이상의 것들을 채집하여 저장하여 소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매키넌은 주콴시 족의 청년인 기트가오에게 "왜 될수록 많은 먹을거리를 수집하여 저장해두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기트가오는 매키넌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하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는 마음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J.B. 매키넌은 『디컨슈머: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온다 The Day the World Stops Shopping: How Ending Consumerism Saves the Environment and Ourselves』(2021)에서 인간에게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도록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구조를 지적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는 국가들의 우선순위를 결정짓는 최우선 척도로 부상하였다. 현대국가는 발전국가론에 입각하여 경제 발전을 최우선에 두었으며, 국가의 경제는 퇴보나 멈춤이 없이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는 철학이 자리 잡았다. 발전경제론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고 더 많은 것들이 소비되도록 부추기며 소비를 현대사회의 미덕으로 찬양하였다. 사람들은 돈을 저장하기보다는 돈을 써서 재화를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주체로 찬양받기에 이른다. 소비하는 인간이 현대인의 가장 훌륭한 자질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각국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고자 셧다운(Shutdown)을 도입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소비를 멈추었다. 전 세계의 공장들은 가동을 멈추고 차량, 비행기, 유조선과 화물선 등의 운행이 대폭 감소하였다. 그 결과 즉각적으로 지구의 환경이 급격히 개선되었다. 하지만 경제를 최우선에 두는 집단이나 경제성장을 국가지도자의 가장 큰 책무로 보는 국가지도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불길한 상황이었다. 각국 정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두 가지 전략을 채택하였다. 첫 번째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ying, QE)로 시장에 돈을 풀기 시작하였다. 또 다른 조치는 보조금을 지급하여 사람들의 위축된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돈을 줄 테니 사람들은 평소대로 소비를 지숙해 주면 코로나-19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최소화될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이 두 가지 조치에는 현대 경제가 두 행위자 집단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앙정부, 즉 국가와 소비자인 우리 개개인. 현대 사회는 우리의 소비 활동으로 유지된다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소비는 비정상적인 형태로 진화하였다. 오늘날의 거대 기업들은 과거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가전제품을 비롯한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것들을 갖춘 삶이 새로운 삶의 표준(standard)이라고 우리를 세뇌시킨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이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더 자주 소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품을 빠른 주기로 시장에 출시하는 쪽으로 기업의 의무가 이동하였다.
애플(Apple)만 하더라도 매년 9월 신형 아이폰(iPhone) 모델을 공개한다. 시장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면 사람들은 1년 만에 기존의 제품을 중고로 팔고 새 제품을 사며 그렇게 매년 새 스마트폰을 손에 넣는다. IT 기기 업계의 빠른 속도전은 H&M,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와 같은 패스트패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생산하지만 사람들이 금방 쓰고 버릴 것, 혹은 금방 싫증내고 새로운 제품으로 갈아타도록 부추긴다는 점에서 애플이나 H&M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뉴스에서는 매년 신형 애플을 처음 구매한 사람이 뉴스에 보도되고, 애플 매장에서는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로 제품을 사면 스태프들이 큰소리로 축하를 유도하고 사람들은 덩달아서 같이 축하해 주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언가를 이용하고 내 것으로 소유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행복, 쾌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중독에 무감각하고 도파민(dopamine)에 탐닉하는 문화가 과도한 소비문화로 더욱 심해지고 반대로 왜곡된 소비문화가 우리 사회의 도파민 중독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매키넌의 『디컨슈머』에서 현대사회의 과도한 소비문화가 미치는 지구파괴의 문제, 사람들 간의 소외 현상을 다룬다. 하지만 매키넌은 좌절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는 일명, 다운사이징(downsizing)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deconsumer)의 삶을 소개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과도한 소비를 멈출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거기다가 정부와 사회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함께 고민한다. 그의 제언 중에는 소비 감소가 경기 침체와 직결되지 않는 양적 데이터를 근거로,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 발전국가론을 버리고 질적 기준을 우선하는 국가론의 정립이 포함되기도 한다.
어떤 한 건강 유튜버는 종종 자신의 채널에서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나쁜 음식이라고 알려진 것들은 실제로는 너무 많기 때문에 문제를 발생하며,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나 영양제도 많이 섭취하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과연 음식만 그렇겠는가? 인간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이용하고 소비하여야 한다. 겨울이 되면 얼어 죽지 않으려고 두꺼운 겨울옷이 필요하고,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선풍기를 필요로 하고 다섯 달 동안 지속된 2024년의 더위는 이제 에어컨은 한국에서 필수 가전제품이라는 걸 입증해 주었다. 좋은 직업을 갖고 경제적인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서 사람에게는 교육이 필요하고 부모는 자녀들이 교육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적당해야 한다. 옷도, 전자기기도, 부모로서 자녀에게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 역시도. 문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서 온다. 불교나 유교는 끊임없이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의 원칙을 가르친다. 소비는 나쁜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그저 남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은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소비한다면 문제가 된다. 그 파괴적 영향은 본인에게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지구에까지 미침을 매키넌은 『디컨슈머: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온다』에서 상기시켜 준다. 소비의 노예가 아닌 소비의 주인이 되는 데 같이 고민해 볼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