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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수다인 Sep 25. 2024

[도서리뷰] 고립의 시대

지지 마세요, 외로움이라는 괴물한테!!!

“외롭습니까?”


누가 당신의 얼굴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무어라 답하겠는가? “예”, “아니요” 혹은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면 답변이 끝날 간단한 질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당황하며 쉽게 “네” 혹은 “그렇다”라고 대단하지 못할 것이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개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흔히 무언가의 결핍, 정신적·심리적으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외로움은 우울(depression)과 연결되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disorder)’인 우울증의 변형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심리 검사 항목에는 1주일에 얼마나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지를 질문하여 피검사자의 정신건강을 가늠한다. 때문에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게 터무니없는 오해는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숨기고 싶은,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 상태이며 매우 친밀한 아니 오히려 너무 친밀한 사람에게는 차마 고백하기 어려운 감정의 상태이다.



외로움은 비밀과 같은 감정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호소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제 동네에서 정신의학과, 신경정신과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 Organization, WHO)는 건강의 요소로 신체뿐 아니라, 정신 및 사회적 상태까지 제시한다. 건강과 웰빙에서 정신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과거에 비하여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료기관의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정신건강을 다루는 병·의원의 수가 급증한 데에는 정신적 영역을 강조한 현대적 건강 개념의 정립만이 영향을 미쳤을까? 의료도 다른 재화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시장(market)의 일종이다. 현실에서는 공급자가 수요를 부추기는 사장실패(market failure)가 종종 발생하지만,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강조하듯, 기본적으로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발생한다. 정신건강을 다루는 의료기관의 양적 증가 현상은 평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방증하는 증거이다.


이 글의 처음에 제기한 질문에 대해 나는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 과거가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지만 외롭다는 감정이 들 때와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일자리를 갖지 못한 백수로서 늘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이는 오히려 점점 더 들어서 40대 중반이 되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며 올해 들어 몸 이곳저곳이 아파서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었다. 배우자나 같이 사는 가족도 없어 혼자 일어나 혼자 잠들고 삼시 세끼를 혼밥 한다. 친구도 거의 없으며 그마저도 각생이 있기에 몇 개월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보낼 때도 있으며 문자 하나, 카톡 하나 주고받는 일 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이러한 상태는 꽤 여러 해 지속되어 과거나 지금이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는 외롭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였을 거라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나의 상태를 거울삼아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교류하지 않고 단절되어 있는 “나 혼자(alone)”의 상태 여부와 아무 관련이 없는 감정 상태라는 것을. 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면 반대로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 느낄 수도 있다.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 전 영국 총리


외로움은 21세기 가장 큰 키워드 중 하나이다. 지난 2018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영국 정부는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다. 외로움을 정부가 개입하여 관리해야 하는 공공정책의 대상으로 선포한 것이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며 병·의원에 가서 정신상담을 받으라는 지원 사업을 하는 게 외로움부가 하는 주요 업무일까? 고작 그 정도라면 기존의 복지부나 보건부, 대한민국으로 치면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해도 충분하다. 그 이상으로 정부 조치가 필요하다고 때문에 당시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 총리가 정부부처를 신설한 게 아니겠는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지원 제공하는 건 일종의 사후적(ex-post)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뒤처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전에(proactive) 예방하고 문제의 발생 소지를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더욱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다면 별도의 정부부처인 외로움부 역시 국민들이 외로움으로 고통받기 전에 사전에 조치를 하는 업무가 요구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외로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부처의 신설은 궁극적으로 외로움이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질병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1967-)는 이 특성을 간파하였으며 『고립의 시대 The Lonely Century: How to Restore Human Connection in a World that’s Pulling Apart』(2021)에서 외로움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다룬다. 허츠는 일상 속 여러 영역에서의 단절(apart) 혹은 소외가 사람들의 외로움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소외는 현대 도시의 인프라 및 공공디자인, 기계로 대체된 자동화된 노동 환경과 같은 물리적인 환경에서 비롯된다. 뿐만 아니라, 정치 영역,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온라인 공간, 계약직 노동자를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긱 경제(gig economy)의 근로 계약 상태 등의 비물질적인 요소도 소외의 주범이다. 


엄청난 팔로워 수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은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불과 몇 분만에 수 만개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지만 팔로워 수가 백 명도 안 되는 평범한 우리가 올리는 게시실에 좋아요는 눌리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나만 빼고 자기네들끼리 단톡방을 파서 이야기를 하고, 핫플에 놀러 간 인스타그램 사진에 나는 없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역시 인스타그램에 호캉스를 즐기고 오마카세를 즐기지만 나는 방구석 컵라면쟁이일 뿐이다. 누군가는 포르셰 마크가 선명하게 보이는 차량 안에서 셀카를 찍지만 나는 따릉이로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뚜벅이일 뿐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남에 개인 병원을 개원하거나 역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지만 나는 연봉 3,000만 원도 안 되는 1년 계약직이고 재계약이 성사될지도, 다른 더 좋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데 나는 썩다리 원룸에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감하는 삶이고, 내가 뽑은 정치가들은 날 위한 정책이 아닌 부자 감세 정책이나 내놓는다. 외로워서 데이팅 앱을 켜서 누군가와 대화가 이어져도 내 상황을 알게 된 상대는 나와의 매치를 취소하고 나와 방금까지 대화했던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내가 지금까지 누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거지? 귀신하고 얘기했나? 이렇게 현대 사회의 모든 일상이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는 환경이기에 사람들은 쉽게 외로움의 덫에 빠진다. 대도시의 생존법이 이러할진대 누가 감히 외로움이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질병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1967-)


허츠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분석,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별도의 장으로 할애한다. 고독, 외로움, 소외, 단절, 현대사회의 노동문제, 정치적 극단화 등의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여러 관련 책을 읽어 본 사람들에게 허츠의 제언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허츠가 아닌 아마 다른 석학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해외 사회학자들이나 경제, 정치학자들의 서적은 책에서 다룬 문제를 타개할만한 방법을 마지막 장에 제시한다. 이들의 제언 내용은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마지막 장을 제언으로 할애하는 핵심 이유는 아직 낙담하고 포기해서는 안 되고 비록 더디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언가 행동에 나서도록 자극할 수 있게 facilitating 하는 데 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외롭다.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특히 현대 대도시의 삶에서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시스템과 메커니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허츠는 서로 힘을 합쳐야 외로움에 싸우기를 독려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언이 있다. 이 고립의 세기, 외로움의 세기에 우리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연결을 회복해서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을 막아야 한다. 노리나 허츠는 다음의 문장으로 책을 마친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지금 이 순간 외로움으로 신음하고 있을 내 주변 누군가에게 함께 있어주는 건 어떨까? 물리적으로 함께 있어 줄 수 없다면 문자 한 통, 메시지 하나, 전화 한 통이라도 해도 좋다. 외로움을 막기 위한 공동의 투쟁은 그러한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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