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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수다인 Sep 05. 2024

시절인연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서울에서 같은 동네서 40년을 넘게 살았다. 동네 자체는 좋았다.

서울시의 평균 반지름이 17km라고 봤을 때 중심에서 약간 먼 동네로서 교통도 좋고

서울 내 다른 곳으로 가기에 큰 무리가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도 안 한

다 늙은 자식이 부모와 같이 사는 건 자식이나 부모 모두에게 할 짓이 아닌 게 문제이다.

결혼 안 한 자식은 웬만하면 부모하고 떨어져 사는 게 순리인 것 같다.


본가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그러다가 지난 2021년 7월 현재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3km 정도 떨어진 같은 서울 권 내이다.

우연히 들른 이 동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내 조건에 맞는 집이 있다며 근처의 한 동짜리

도시형생활주택을 추천해 주었다. 그 건물은 신축의 10층 이상의 건물로서 한 층에 8 가구가 사는 집이었다.

안내받은 매물에는 이미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지만 준공된 지 2년 차로서 그 신혼부부가

첫 세입자였다 한다. 그 신혼부부는 남편의 근무지가 경기도 수원으로 바뀌어서 더 살고 싶지만

출퇴근 문제로 인하여 수원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전세 세입자라고 한다.

하철 역과는 도보로 30초 정도로 가까워서 역세권 of 역세권이었으며, 왕복 8차선의 큰 도로가에

인접한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은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 기존 세입자에게 왕복 8차선을 지나가는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시끄럽지 않냐고 물었는데 자기들은 2년을 살면서 한 번도

도로 소음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다 보니 그들 말이 맞았다. 이미 이 건물 전에

큰 건물 두 개가 일종의 방음벽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의 편리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집이 선사하는 거실 풍경에 매료되었다.

거실과 안방이 정남향인데, 거실 앞으로는 이 건물보다 큰 건물이 전혀 없었다.

작은 개인주택이나 빌라들이 즐비한 주택가이고 멀리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시티뷰(city view)의 집이었다.



낮에 집을 보러 갔음에도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는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과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고가도로에서 나오는 인공조명으로 인하여 나이트뷰(night view)를 선사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고가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다소 지루할 수 있을만한 정적인 뷰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어

심심하지 않을 저녁 시간을 선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집을 보고 와서 바로 부동산 중개사무소로 돌아가서 계약을 하겠다고 했고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집주인에게 보냈다. 그렇게 계약금을 건 게 2021년 4월 초였고 그전 세입자는 2021년 6월 30일 이사를

갈 테니 그 직후부터 공식 계약으로 나는 2021년 7월 초에 이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사를 하기 전까지 두 달 여의 시간이 남았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게

처음으로 본격적인 독립생활다운 독립생활을 하는 거고 거기다가 아파트는 아니지만 거실 하나에

방 두 개 그리고 위에서 보이는 멋진 시티뷰를 선사하는 신축급 건물에 밝은 빛이 한가득 넘치는

정남향에 주택가에 자리 잡고 주변에 사람들이 시끄럽게 노상에서 술판을 벌이는 저급한

유흥 주점들도 없기에 나로서는 너무나 기대가 컸고 어서 빨리 이사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윽고 2021년 7월 이사 날이 되었다. 한국의 7월은 누구나 다 알 듯 장마기간이다. 본격적인

무더위, 폭염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높은 습도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흘렀던

땀은 증발하지 않고 마치 내 몸과 일치된 것처럼 남아 있는 그런 기분 나쁜 장마 기간이다.

그날 아침도 매우 덥고 습한 날씨였고 이사는 오전 11시가 안 되어 끝났다.

이삿짐 센터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도 정리와 마무리는 내 몫이다. 한 참 에어컨을 틀고

짐 정리를 했고 얼추 늦은 오후 정도에 정리가 끝났다. 혼자 살고 거기다가 세간살이도 별로

없던 나였기에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집에 대한 불만은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새로운 침대를 결정하지 못한 나는 대충

쓰던 토퍼를 깔고 안방에서 자려고 했는데 안방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마 그때 안방 천장을

처음 쳐다본 것 같다. 안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처음 알았다. 이 집에는 매립형 에어컨이

딱 한 대, 거실에만 있었다. 내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너무 많이 갔었나?

당연히 거실에 한 대 있고 안방에도 하나 더 해서 총 두 대의 에어컨이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래, 여긴 아파트가 아니라 실평수 13평의 두 룸 도생이지.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안방에서 자야 하나 아니면

한 여름동안 거실을 포기하고 에어컨을 쐬면서 거실에서 자야 하나.

에어컨을 틀다가 몇 시간 후 자동 꺼짐을 해놓은 나는 이내 후회했다.

앞으로 받게 된 전기세 폭탄은 차치하더라도 에어컨이 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더위와 답답함에 잠에서 깼다. 그렇게 나는 이 집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집을 보러 왔을 때 안방에 에어컨이 없는 걸 확인했다면 이 집을 절대 계약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름은 1년 중 한 때이니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저녁나절이나 12시 전이면 그러려니라도 할 텐데 새벽 2시 어쩔 때는 새벽 3시에도 위층인지

옆집인데 발망치 소리에 온갖 소리가 다 들리는 거였다. 층간소음이 왜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왜 층간소음으로 인하여 살인 사건으로까지 비화되는지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집은 나에게는 안락한 안식을 줄만한 보금자리라는 기대에서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라도 빨리 이 집에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023년 4월 부동산중개사분한테서

연락이 왔다. 전세 2년 계약 만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계속 살 거냐 마실 거냐.

나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더위는 한 철이라 한 달 정도만 고생하면 되고, 겨울에는 집 자체가 워낙

따뜻한 편이라 굳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견딜만한 수준이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대 때도 없는 층간소음이었다. 위층 세입자가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그렇다고

관리사무소에 얘기해도 자기네들도 해줄 게 별로 없으니 참고 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며 나를 예민보스로 만들어 몰아가는 데... 흠...


그렇게 비슷한 조건의 다른 집들을 알아봤는데 비슷한 금전 조건에서 지금 이보다 좋은 혹은

이와 유사한 집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직장도 없던 나로서는 어느 동네에 직장을

구할지 알 수 없기에 섣불리 움직이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별 다른 수 없이 전세 계약 2년

연장을 했다.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세 계약을 갱신해도 집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인

윗집의 쿵쾅거림은 여전했고 이 집을 계속 억지로 살아야만 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내 상황이 더 사람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2023년 11월 어느 날 그날도 12시가 넘었는데 쿵쾅거리는 소리가 지속되었고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위층에 찾아 올라갔다.

당연히 아무리 밑에 층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면

문을 안 열어 주겠지. 거주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나는 손 편지를 써서 그 집 앞에 붙여 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올라간 이후로 층간소음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간혹 가다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소음은 충분히 견딜만한 수준의 그런

수준의 소음들이다. 그렇게 층간소음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2024년부터는 해방되기 시작하였고

층간소음은 집에 대한 만족도와 반비례한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2024년 2월 말 오후에 잠시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한 층에 8 가구가 사는 집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나와 완전히 반대에 위치한 호수이자 내가 사는 집의 구조 및 평수와 완전히

같지만 방향만 집과 거실, 화장실의 위치만 반대인 걸로 아는 집에서 한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나왔다.

이 집에서 2년 이상을 살다 보고 한 집에 8 가구가 살다 보면 대충 같은 층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자주 마추지면 어떻게 생겼는지, 혼자 사는지 둘이 사는지, 아기는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나와 완전히 반대 호수에 사는 집은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미 살고 있었고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두 남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두 부부가 보이지 않길래 이사를 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서 이 층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2월의 어느 날에는 아기를 안고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아기가 똘똘하니 예쁜데 아가들은 웬만하면 나같이 시커멓게 생긴

아재가 쳐다보면 얼굴을 피하거나 울기 마련인데 아니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 집에서 아기 엄마가 나왔다. 나보다 먼저 이사 와서 살던 그 신혼부부 중 아내 되는 사람이었다.

안 보였던 사이 아기를 낳았구나. 아마 아기를 낳고 잠시 친정에서 갓난 아기와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안 보였겠지.

아기를 매개자로 아기 할머니가 나한테 말을 거셨고 아기 엄마도 한 마디를 하고 나도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마디를 하고, 1층에 도착하자 아기 엄마가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나도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점심시간 때 집에 밥을 먹으러 왔을 때 건물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그 아기 엄마와

아이를 마주쳤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인사를 나누고 엘베를 기다리는 데 어색한 건 또

죽어도 못 참는 성격에


"저하고 같은 평수, 같은 구조에 사시는 걸로 아는 데 성인 둘에 아기 하나 살기에 좁지 않으세요?"

라고 물으니 아기 엄마는


"조금 작기는 한데 대신 저희는 다용도실이고 안방이고 짐을 천장까지 쌓아서 욱여넣고 살아서

그냥 그런대로 살고 있어요"

라고 했다. 그러는데 갑자기 그 아기 엄마가 "저희 집 보러 오실래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적잖이 당황스러운 나는 '제가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갈게요.'라고 거절했으면 됐을 텐데

그게 "좀 이상하지 않나고 갑자기 집 보러 가는 게"라고 답했고

아기 엄마는 "뭐 어때죠? 지금 남편도 재택근무 중이라 집에 있어요"라고 하면서

대뜸 자기네 집 물을 열면서 "자기야! 저번에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다던 이웃 분 집 보러 오셨어"라고

하는 거였다. 집 안에는 진짜 그 신혼부부의 남편이 있었고 그렇게 두 부부는 나에게 거실이며

안방, 작은 방과 다용도실까지 어떻게 살림살이를 놓고 사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집 구경을 한 후에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기 엄마와 직업적으로 공통점이 있었고

거기다가 같이 아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 집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머물렀다.



그때 내가 본가가 성북구 XXX 쯤이라고 하니 이사를 생각하던 그 집 부부는 나를 만나서 그 동네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면서 그 동네에 대한 이야기며 뭐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고 부동산과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도 하게 되었고 부부와 전화번호를 교환하였다. 그 집에 재차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두 부부와 아기를 우리 집에 초대한 적도 있었고 그렇게 셋이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유튜브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아~ 유튜버시구나. 저도 유튜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전에도 종종 했었다."라고 하니

그 집 아내가 "그러면 생각만 하지 마시고 함 해보세요"라고 하면서 해보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미술사나 그림이야기 같은 혹은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도서리뷰 같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하니 두 부부는 꼭 해보라는 조언을 하고 그 두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돌아갔다. 유튜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유튜브를 하게 된다면 이런 주제로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그전에 다른 친구한테 한 적은 있지만 영상 프로그램을 조작해서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저 먼 얘기였고 그냥 입에서 내뱉고 마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부부와의 대화는 달랐다. 이번에는 진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2024년 6월 10일

처음으로 유튜브 영상을 계정에 올렸다. 유튜브를 하기 전에는 그 부부와 연락할 일이 있으면

아내와 연락을 했었는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니  그 집 남편과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유튜브 선배로서 그 남편은 나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었고 응원도 해주면서 비판도 해주었다.

그리고는 지역구에서 개최하는 문예공모전에 참여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고 실제로 그 남편은

작년에 에세이 부문에서 가작에 당선되었던 전력이 있어서 주변에 그런 수상 경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 그럼 나도 이번에 해볼까?라는 생각에 응모하였다. 물론 결과는 처참히

떨어졌지만... 그 남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나에게 브런치스토리를 소개해주었다.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로 등록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알리고 매년 개최되는 출판

지원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보는 건 어떠냐고. 그래서 이렇게 여기에도 글을 쓰고 있는 거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것도, 지역구의 문예공모전에 난생처음 공모를 해 본 것도,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에 작가로 등록해서 활동해 보는 걸 생각하게 된 것도 다 2024년이 되고 난 이후이고

그걸 실천에 옮기게 된 것도 2024년 2월 이후 그 부부와의 인연이 생기고부터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와 그 부부는 이미 내가 2021년 7월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왔을 때부터

같은 층에서 살았었다는 거다. 그렇게 거의 2년 반 정도 교류가 없다가 뜬금 2024년 2월 이후에야

그 부부와 인연이 생기게 된 거다. 같은 공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던 전혀 모르던

두 집단이 2024년 2월이 되어서야 같은 궤도 안에 진입한 것 같다고나 할까?

아마 내가 2023년 6월 전세 계약이 종료되어서 지금 사는 집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그런데 왜 어째서 2021년 7월도, 2022년도, 2023년도 아닌 2024년 2월 이후에야 그랬던 걸까?


유튜브에서는 몇 년 사이 "시절인연"이 대중적인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 용어는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로써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이나 혹은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후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법(法)을 설(設)하시던 과정에서 이 "시절인연"의 중요성이 무수히

불교 경전에서는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이를테면, 붓다께서는 어느 날 깨달음의 눈으로 살펴보신

후 어느 한 소녀가 붓다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아라한 과을 증득할 시절인연이 되었음을

아시고 그 소녀를 찾아가 법을 설하였다는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렇게 시절인연은

불교의 용어였는데 유튜브에서는 서양과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소개하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바람에

시절인연이라는 용어는 불교 용어에서 보다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시절인연이라는 게 나와 그 옆집 부부와의 현재 상황을 보면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 부부와 나는 어쨌든 지금 인연이 되어서 종종 왕래도 하고 연락도 자주 하고

그렇게 지내는 데 그게 2021년도, 2022년도, 2023년도에는 아니지 않았던가? 2024년 2월 이후가

되어서야 그들 부부와 내가 이런 관계로 발전한 게 아닌가? 나와 그들 부부가 인연은 있었지만

그 인연이라는 게 2021년도, 2022년도나 2023년도에는 아직 때가 아니었기에 그저 같은 공간에서

다른 궤적을 그리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그들 부부와의 인연은 2024년도 2월이 되어서야

꽃필 예정이었고 만약 나나 혹은 그들 부부가 이 건물에서 이사를 나갔다면 결국 그 꽃은 피지 못하였을

거 아닌가? 그렇다면 왜 나와 그들 부부와의 관계가 2024년이 되어서야 인연이 될 시절을 맞이한 걸까?

아마 그들 부부와 나와의 인연의 끈이 그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한테서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들 부부의 친정엄마에게서 있었던 것일까?

이런 걸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이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지고, 못 만날 사람은 결국 못 만난다고 하지 않은가?

결국 그 부부와 나는 만날 사람들이었지만 그때가 2024년 2월 이후였던 거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시절인연이라는 건 정말 존재하는 거고, 사람의 논리나 과학,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irresistible) 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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