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을 딴 뒤에는 파티가 있다

서울대 의대 예과생활

축하한다! 당신은 힘든 수험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서울의대에 입학하였다.합격과 동시에 여지껏 상상하지 못했던 삶이 펼쳐진다. 첫 번째로 주변의 시선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동년배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되고, 부모님들도 모임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시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동안 수험생활 뒷바라지 하신 부모님들께 합격하나로 못다한 효도를 다 한것 같은 느낌이다. 참 자식 공부잘하는게 뭐라고 그런지, 웃기다가다고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인가도 싶다. 아직 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했는데도, ‘예비 의사’ 라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이 붙게 된다. 주변사람들이 갑자기 의학지식에 대한 질문을 반농으로 하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든다.


곧 돌아올 설에는 여러분은 평소보다 많은 세뱃돈을 받게 될 것이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듣던 작년과는 다르게, “아이고 자랑스러운 서울의대생 우리 조카 왔니”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잔소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작년에는 공부 열심히 해서 수능 잘 봐야된다는 잔소리였다면, 이번에는 아마도 앞으로 무슨 과를 전공 할거냐는 말로 시작해서, 피부과, 성형외과, 그리고 치과(치과는 의대가 아니라 치대를 가야한다는 말을 아마 앞으로 매년 하게 될것이라는 점은 덤이다)가 좋다는 말을 한시간 정도 들을 것이다. 하지만 한 시간 내내 치과 하라는 얘기를 듣더라도 여러분의 기분은 전혀 나빠지지 않을것이다. 혹시나 동년배의 사촌이 있다면, 서로 좀 뻘쭘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저녁에 할아버지가 “우리 손주가 서울의대 갔으니 담가둔 산삼주 마시자!”를 외치시며 같이 한두잔 하다보면 뻘쭘함은 날아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설과 동시에 파티가 끝나냐고? 걱정하지 마라. 아직 입학식도 시작하지 않았다. 내 얘기를 좀 해주자면, 나는 서울의대를 입학한 뒤로, 학교 다니는데 필요할거라면서, 아버지가 최신형 노트북을 백화점에서 일시불로 사주셨다. 이게 왜 대단하냐고? 우리 아버지는 결혼할때 구입한 15인치 브라운관 tv를 내가 중학교 2학년때까지 쓰신 분이고, 블루레이가 세상에 나왔을때, DVD 플레이어를 막판 할인 받아서 구입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최신형 노트북을, 그것도 백화점에서, 일시불로 사줬다!


가족과 친척들과의 즐거운 시간만 있는것은 아니다. 입학 전에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새내기 배움터라는 모임을 구성해준다. 여기서는 서울대 신입생들이 무작위로 조 배정을 받아서, 입학 전에 학교 구경도 하고, 몇번의 소모임도 한다. 입학 이후에도 이 모임은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 모임 안에서 결혼하는 부부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확률은 대단히 낮고 1학년 1학기가 끝나면 대화가 오가지 않는 단톡방으로 그 흔적을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이때 만난 타과 친구들과 같이 나눈 시간은 정말 걱정없이 즐겁고 신나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여행에 즐거움은 여행 가기전의 기대가 주는 즐거움이 반, 여행후에 추억하는것이 나머지 반 이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입학을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들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입학 전의 이런저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덧 3월이 되고, 입학식을 하고서 학교를 다니게 될것이다. 예과의 장점 중에 하나는, 학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진급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공부로 한가닥씩 한 사람들을 모아놓았기에 학점을 잘 받는것은 녹록치 않다. 어쨌든 이 장점은, 대학수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교양과목을 수강하는데 도움이 된다. 졸업하고나서야 뒤늦게 깨달아 버렸지만, 서울대의 교양과목은 상당히 질이 좋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열심히 듣고 싶은 과목들이 참 많다. 서양미술의 이해, 서양음악의 이해, 현대음악의 이해, 미학과 예술론, 예술과 과학, 현대 사회의 심리, 현대사회와 법 등등… 모두 내가 편한 마음으로 수강했던 과목이다. 좀 열심히 들었던 과목으로는 생활원예가 떠오르는데, 그 수업에서 배웠던 제철 식물과 세상에서 제일 달다는 망고스틴이라는 과일(의사 면허를 딴 지금까지도 먹어보지 못했다)등의 지식은 살아가는데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 후학 여러분에게 추천하건대, 교양강의를 열심히 들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학점이 짜기로 유명하다거나, 혹은 너무 생소해서 학점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과목들도 부담없이 들어보라. 향후 인생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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