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5.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또다시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순간순간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을 스쳤다. 길가에 핀 꽃들에 마음이 흔들려서 가끔 걸음을 멈추었다. 일행들과 함께 걷다 보니 내 속도가 아닌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야 했다. 잠시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에 담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라도 하면 두 배로 빨리 걸어야 한다. 발길을 재촉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걷는 게 아니라 뛰다시피 그들과 보폭을 맞추었다. 걷다 보면 발걸음이 맞는 일행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지금껏 나의 시간보다 세상의 시간에 맞춰 살았다. 때론 나의 걸음보다 더 빨리 걷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살다 보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바쁘게 살거나 빠르게 걷다 보면 아름답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이 순간 걸음을 멈추고 내 인생에 아름다운 것을 듣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업을 하다 보면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많다.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이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뒤돌아서면 커져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넘어지고 다치면 함께 아파하고 친구들과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사회를 알아가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부모도 어른이 되어간다. 현실은 아파도 추억은 아름답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지나온 모든 시간은 엄마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기가 되었다. 퇴근하면 다시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 아내, 맏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나를 돌보지 못했다. 우선순위를 가족에 두고 목표를 향해 걸었다.
열심히 살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인터넷 쇼핑이라는 새로운 쇼핑문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새로운 사업 시작과 동시에 결혼하게 됐다. 물량이 넘쳐나자, 결혼식도 휴일에 맞춰서 하고 신혼여행도 2박 3일 만에 돌아와야 했다. 업체 배송보다 주택 배송이 늘어났다. 물량이 늘어날수록 배송은 느려져만 갔다. 배송 차를 늘리고 직원을 늘려도 밀려드는 물량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태교는 불만 고객의 전화벨 소리와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들으며 워킹맘이 되어갔다.
서툰 사업은 나에게 밀린 숙제처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업이 커갈수록 책임져야 하는 업무는 늘어만 갔다. 직원이 10명이 넘으면 그때부터는 장사가 아니라 경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장사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늘어나는 직원과 업무차들,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능력도 재무제표도 몰랐다. 레버리지가 뭔지도,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줄도 몰랐으니, 사업이라는 무게가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
회사 일만 하기도 바쁜데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다시 출근했다. 시댁 제사라도 있는 날이면 12시가 돼서야 집으로 왔다. 결혼해 보니 장손 집안의 큰아들이었다. 시할머님과 시어머니와 함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신혼살림이 실감이 났다. 딸 부잣집에서 사랑만 받고 자란 막내딸이 하루아침에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내 시간을 가진다는 건 사치였다.
하루하루가 늘 피곤했다. 내 어린 시절 엄마의 삶이 그랬듯이 이런 삶이 당연하듯 살았다. 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도 사계절을 밤낮으로 일하셨다.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삶을 희생당한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할 나이인 10살에서 멈췄다. 엄마의 시계가 멈춘 후 기댈 언덕이 없었다. 일도 서툴고 육아도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의지할 때 없이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샛별을 보고 출근하면 저녁별을 보고 퇴근했다. 출퇴근 시간도 줄여서 근무하다 보니 사무실 바닥에서 자야 할 때도 있었다. 추운 겨울 차가운 냉기를 막아주길 바라며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았다. 온풍기가 없던 시절이라 전기히터로 사무실 공기를 데웠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추위를 견디며 4시간 남짓 잠을 잤다. 24시간 중의 4시간 자고 20시간은 쌓여가는 작업량과 사투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