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다이어리 3

일상의 한 켠은 그대로더라

by 보통사람

2박 3일간 병원에 입원해 항암 치료를 받은 엄마는 바로 집으로 내려갈 여력이 되지 않게 됐다. 병원에서 두 시간 거리인 우리집에서 오래 머무는 날이 늘어갔다. 엄마의 숨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지.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서울로 올라와 자취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해 정착한 터라 명절이나 특별한 날, 짬이 날 때 친정집에 내려가 살짝씩 엄마 곁에 붙어있던 게 다였다.


엄마는 아파도 그대로였다. 뭘 먹을까 고민하고 손주들이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메뉴를 구상하고 그나마 컨디션이 올라올 때는 산책한다는 핑계로 집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봤다. 항암제가 몸 구석구석을 돌며 후유증을 일으키느라, 이런 후유증은 생전 처음이라 불편할 텐데도 엄마는 엄마의 위치에서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싶어 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어. 싫은데."

"뭐, 별로 안 빠졌는데, 엄마?"


몸의 털들이 스르륵 힘 없이 빠지기 시작하자 엄마는 밤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진짜 암 환자가 된 것 같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 있는 엄마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엄마를 보면서 나는 두 아이들을 픽업했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라 생각하려 애썼다.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거라 생각하면서.


엄마는 집에 내려가서 머리카락을 밀었다. 동네 미용실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아서 하염없이 걷다가 다른 동네 낯선 미용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민머리에 두건을 쓰고 우리집에 온 엄마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크게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고맙게도 우리 아이들이 외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외할머니가 집에 왔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이게 왜 이리 고맙던지.


엄마가 우리집에 있는 동안 나는 더 내 감정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어떤 감정의 동요에도 굴하지 않게, 그 누구도 내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없도록 방어벽을 굳건하게 세웠다. 이게 절대 안 될 줄 알았는데, 어렵지 않았다. 엄마 앞에서는 철 없는 딸로, 두 아이와 남편 앞에서는 감정적으로 흔들림 없는 엄마와 아내로 그렇게 일상을 보냈다.


병의 크기와 상태가 정말 위중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엄마의 상황이 그리 무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족은 그게 아니더라. 가늠할 수 없는 엄마의 상태와 상황이 읽히지 않는 게 그렇게 불안하더라. 그리고 왜 이렇게 엄마랑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투병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던지 너무도 야속해서 그 장면이 재생될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봤다.


외할머니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사실 집에 외할머니가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신났던 두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장난을 쳤고 재롱을 떨었다. 손주들이 엄마에게 큰 위안이 됐다는 데에 안도했다.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 엄마와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상의 한 켠은 그대로라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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