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말 것
나는 어린 시절, 내 감정을 남들에게 표현하는 걸 참 어려워했다. 주변의 상황과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 감정보다는 친구들의 감정이 편한 걸 선호했다. 늘 눈치를 살폈던 아이였는데 그 때에는 내가 이렇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회피를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늘 내 감정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주변 눈치만 슬슬 보다가 주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고 행동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날 떄 나를 위한 적절한 방안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문제 앞에서 뒤돌아서는 것, 어린 시절 그리고 사춘기 시절의 나였다.
물론 너무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 못한다. 내 기질이나 성향도 연관있었을 테고.
어느 날 대학생 때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왜 네 의견을 말 안 해? 누가 싫어하건 좋아하건 니 생각을 좀 말해."
아, 띵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은 울림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해결 방법인데 왜 그 때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친구의 조언에 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야, 이거 쉽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 하나만 잘 읽어보면 될 일을, 나는 내 시선을 내가 아닌 주변인, 타인에게 맞춰놓고 있었기에 남의 눈치 보랴, 내 눈치 보랴 마음이 상당히 바빴다.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좋아해서 만나는 사이인데 왜 내가 남자친구 눈치까지 보고 있느냐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불편하게 사귀고 있는 줄 알았더랬다.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를 듣던 나는 내 연애 방식과 친구들의 연애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어색하게 리액션을 했지만 그 자리에서 나는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렇게 연애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때문에 이제 어엿한 어른이니 연습해보자 다짐했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게 먼저 내 감정을, 내 의견을 하나씩 말했다. 이거 어때? 라고 정말 수십번 연습한 끝에 건넨 내 말에 친구들은 좋아 라고 단번에 대답했다. 가끔씩은 내 의견에 반대할 때도 있었다. 반대 의견을 딱 들었을 때 누가 내 마음을 띵- 울리게 때리는 묘한 울림이 있었지만 이겨낼 만했다. 하나 둘 이겨내니 스스로에 대한 의견에 자신감이 붙었고 타인의 눈치가 덜 보였다. 통쾌했다. 내 생각을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자 시원했고 무언가에게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타인이 내게 말하기를 "파워 E 같아요."라고 한다. 10년 넘게 연습한 결과라고 해야 하나. 나이가 들 수록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상황에 부닥친다. 가끔씩은 집에 돌아와 내가 제대로 이야기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있고 나도 모르게 시간을 되감아서 어떻게 말했더라 복기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머리를 두어 번 흔들어 털어내려고 한다. 지금도 내 의견을 말하는 수련은 진행 중이다. 보다 더 정확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함께 말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른 되는 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