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치료를 상담하러 온 환자에게 의사가 하는 말,
"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드셔도 되고, 대신 반찬 갯수를 줄이시기 바랍니다."
저는 당뇨치료를 시작하시는 (거의) 모든 환자분들께 위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많은 분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십니다.
몇몇 분들은 (머쓱하게도) 더이상 제 진료를 보지 않으시기도 합니다.그런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안돼'라는 메시지는 제가 굳이 하지 않아도 지겹도록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탄수화물 제한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환자분은 거의 다 필요 이상으로 탄수화물 섭취에 극도의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당뇨병 관리는 몇 달, 일 이년 하고 마는 급성기 질환이 아닌데도 환자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그들을 재촉하기 때문에 환자는 조급합니다.
이건 마치, 좋은 분유나 편한 유모차를 고르는 게, 지나보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 때만큼은 세상 그 어느 문제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젠 압니다. 우리는 애들을 학교도 보내야 하고, 사춘기도 넘겨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합니다.
저는 개인별로 지속 가능한 식습관이 다르다는 걸 알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환자들은 본인들이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식품으로 충분한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여주나 돼지감자, 야콘 등입니다.'이건 당뇨에 좋은 탄수화물이니까 괜찮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런 그릇된 신념들로 거의 모든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음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어차피 '좋은 탄수화물'이 들어가도 인슐린이 일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밥을 더 많이 먹고 충분히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끼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잡곡밥도 저는 (환자의 취향이 아니라면) 권하지 않습니다.(GI지수도 중요하지만, 순간적인 피크보다는 당부하면적이 합병증 관리에 훨씬 중요한 것 같습니다.)
셋째로, 대한당뇨병학회를 포함한 국내외 주요 당뇨병 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탄수화물의 일률적인 제한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아래의 식품군별 교환단위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처방되는 열량이 증가함에 따라 당질이나 곡류군의 비율도 비례합니다.1400kcal (체중감량이 필요한 당뇨식이) 의 곡류군 교환단위수는 7장 (공깃밥 2공기 조금 넘는 것) 이며 2300kcal (체중조절 필요없는 당뇨식이) 의 곡류군 교환단위수는 11장이므로 공깃밥 3공기를 먹고도 식빵 두쪽이나 인절미 6개, 혹은 국수를 더 먹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저로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탄수화물을 제어하는 것을 경계하다가 환자도 모르게 고염분 식이를 하게 되는 것이 가장 우려됩니다.
당뇨환자들은 탄수화물을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경계심을 가지므로 식사 시 반찬을 과하게 섭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당뇨환자니까 밥은 덜 먹고 반찬이라도 많이" 라는 이야기도 흔히 합니다.그런데 한국 반찬 류 중에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하지 않는 반찬류가 거의 없습니다. 공복감을 없애기 위해 당뇨환자들은 일반환자들보다 훨씬 많은 염분 섭취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당뇨를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현실적으로는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합병증 발생에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고혈압입니다. 염분은 혈압을 직접적으로 높이고, 혈관을 손상시켜 합병증의 위험을 높입니다.
https://www.elle.co.kr/article/72431
가장 좋은 저염식이의 실천은 '덜 짜게 먹는 것'이 아닙니다.제 경험 상, '반찬을 덜 내어놓기' 즉 '반찬을 올려놓는 그릇 갯수'를 줄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저는 배식판을 이용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