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인공지능 전문가는 2100년 이전에 인간을 가볍게 능가하는 ‘무엇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 ‘무엇’의 겉모습은 쉽게 가늠할 수 없으나, 실체는 분명합니다. 인간보다 우월한 인공지능이죠. 우리는 오래전부터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거나 형상을 파악하기 힘든 대상에 인간의 모습을 부여했습니다. 의인화(anthropomorphism)에 따라 고대 그리스의 신은 인간의 탈을 썼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으며 말을 건넸고, 외계인마저 손가락을 사용해 인간과 접촉했습니다. 이렇게 의인화된 대상은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고개만 까딱하면 지구를 혼란에 빠뜨리는 제우스도 말이 통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죠.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인공지능을 지닌 안드로이드의 의인화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인간을 닮아갈수록 더욱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죠. 안드로이드에게 감정이 있다면, 깊은 상처를 받을 텐데 말이에요.
얼마 전 스카이스캐너가 발간한 보고서는 2025년이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여행을 확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인공지능 여행 도우미가 개인의 생활 패턴 데이터를 파악하고, 음성 상담을 통해 알맞은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가상현실로 간접 체험까지 선사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과 10년 후에 벌어질 일이라고 하나, 현재 흐름이라면 그 시기는 더 앞당겨질 듯합니다. 전 세계 GDP의 9퍼센트를 차지하는 여행 산업으로 IT 기술이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으니까요. OTA(Online Travel Agency)의 비범하고 날카로운 서비스는 여행자에게 적지 않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0년 전에 비해 여행의 편의성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물론 여행자가 인공지능과 대결 국면을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은 타인과의 경쟁도, 알파고와의 경쟁도 아니니까요.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자는 의인화보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훨씬 갈망합니다. 오래되고, 끈기 있고, 삶의 더께를 눅눅하게 지닌채 거리에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는 ‘무엇’을 말입니다. 여행은 다분히 인간적입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아직 더 많은 여지가 남아 있으니까요. 설사 현세의 운명이 다하고, 인간을 능가하는 무엇이 등장한다 해도, 우리는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라도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여행이라는 호기심. 지난 세기 인류의 머나먼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으니까요.
-2016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