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선택의 이야기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말하려면 탄생의 순간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엄마의 뱃속 시절과 갓난아기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어릴 적 기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말하는 게 조금 뒤죽박죽일 수 있다. 그래도 최대한 정리하면서 말해보겠다.
조금 어두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부모님의 실수로 생긴 아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못 받은 것도 아니다. 두 분의 실수여도 나의 존재를 알고서 결혼을 하셨고, 책임을 지겠다는 맹세를 하셨으니까. 어쨌든 나는 존재마저 얼레벌레 생겨버렸다. 두 분도 몸에 품은 생명을 다루는 게 처음이셔서 많이 헤매셨다고, 그래도 내가 너무 소중하다고 술을 드시면 곧 잘 말해주셨다.
그렇게 열 달을 간직한 아기가 나와야 될 순간은 11월 20일.. 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덜 되었는지 그 후로 9일을 엄마 뱃속에서 더 버텨냈고,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는 판단에 유도분만을 포기하고 제왕절개를 하셨다. 예상보다 더 엄마 품에 있었으니 건강하려나, 우는 목소리가 더 우렁차려나, 모든 관심과 우려 속에 아기는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엄마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들어간 인큐베이터.
사인은 심장에 구멍 두 개.
아기는 열 달 하고도 9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제 몸 하나 다 만들지 못했던 거다.
신생아에게 가끔 일어나는 이 일은, 병원에서는 그다지 큰일이 아닐지 몰라도 첫 아이에 처음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 아빠 되는 사람은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펑펑 울면서 꼭 살려낼 거라고 하셨다. 그 바람이 인큐배이터에 닿았는지, 하늘에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아기의 심장은 아물어 퇴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조금씩 자라면서 부모의 기쁨이 되었고, 스트레스가 되었고, 걱정거리가 되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임신부터 탄생의 순간까지 무엇 하나 예상에 맞게 흘러가지 않았던 나는 커서도 똑같은 생활을 했다.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버리면 재미도 없고 나도 더 이상 쓸 내용이 많지 않게 되어버려서 내 인생의 중심이 되는 순간들은 한 편당 한 주제씩 적어보도록 하겠다.
어쨌든, 앞서 말한 대로 이런 탄생을 맞이한 것과 지금의 내 인생을 돌아보니 계획과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운명인가 싶다. 써놓고 나니 조금 서글퍼지기도 하고 '나답다'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말할 내 이야기들을 생각하니 웃긴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이야기는 내 기억이 아닌 엄마의 산모수첩을 메인으로 쓴 사실이다. 물론 엄마의 옛 술주정인 '과거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는 게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하다.
나중에 엄마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등짝스메싱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