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어렸을 때는 부모님 특히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배우고, 다니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어린이 중 하나였고 선택의 권한이라고 해봤자 마트에서 과자 하나 고르는 정도였다. 조금 더 보태서 장난감 하나 겨우겨우 졸라서 사는 정도? 내 유년기 속 선택의 여지는 그저 엄마의 "이거 어때?"의 "좋아/싫어"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이 특출 나게 보수적인 건 아니었지만 나도 딱히 부모님에게 졸라서 시작한 활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아동의 시점(내 경험이므로 매우 주관적이다)에서 보는 선택과 시작의 이야기다.
보통 아이들은 몇 살 때부터 학원을 다닐까?
나는 이 답을 아직까지 모르겠다. 평균값을 인터넷에 쳐보면 될 테지만 시대에 따라 너무 달라지는 답이라 찾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애들보다 일찍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시나 동에서 하는 '평생학습'의 프로그램들이었는데, 서울은 지역에서 하나쯤 있을 '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무슨 센터라고도 하던데 일단 내가 다니던 학원 같은 곳은 '평생학습관'이었기 때문에 줄여서 '학습관'이라고 부르겠다.
나는 5살 무렵 겨울쯤에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학습관에서 처음 배운 것은 발레였다. 꽤 이른 나이에 간 곳이 산수학원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나는 다른 지역의 학습관의 낯선 모습과 낯선 아이들을 마주하며 꽤 큰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 했다. 학습관의 무용실은 5살 꼬마가 보기에는 너무 넓었고, 기존에 배우던 학생들은 모두 언니 오빠들 뿐에, 눈에 익숙한 친구는 하나도 없고, 딱 붙는 발레복에 짧은 치마가 너무 싫어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 신경안정제였던 엄마마저 수업이 진행되면 무용실 안에 없다니.. 5살 아이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제 어엿한 5살이라고 속으로 멋진 모습을 보이겠다며,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을 꾹 참고 발레복으로 갈아입었다.
근데.. 이때부터인가? 내 첫 시작은 늘 내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는 종을 울린 건.
환복을 마치고 줄지어 놓은 무용바에 서기 위해서 몇 발자국 내디뎠을 때, 저 멀리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는 남자애와 정통으로 부딪쳐 머리를 찧게 되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고였다. 결국 나는 이 이상한 환경에 놓인 억울함과 타박상으로 아픈 느낌이 너무너무 억울해서 목놓아 울어버렸다.
최악최악최악! 너무 싫어! 진짜 싫어! 엄마도 싫어! 아파!
내 모든 환경을 원망하느라 얼마나 울었는지, 주변 애들과 발레 선생님의 대처, 무용실을 나가다 말고 달려온 엄마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수업을 어떻게 마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기억을 떠올려보면 안 좋은 감정이 느껴진다.
어렸을 때 나는 또래 애들보다 특별하게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어서, 일부러 몸을 사용하는 수업에 넣은 것 같다. 물론 엄마의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엄마의 어렸을 시절에, 발레를 무척 배우고 싶었는데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것을 자신의 딸에게 시키고 싶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셨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 낯선 환경은 싱크홀이 생긴 구멍을 내다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일이 닥치면 아이는 그 싱크홀 안으로 들어가 떨어져 버린다. 그 구멍을 아이가 스스로 떨어지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은 아이를 편하게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상한 곳에 무심한 면이 있어서 그 후에도 몇 개의 프로그램에 내 동의 없이 나를 집어넣었고, 나는 그 안에서 늘 덜덜 떨어야 했다. 주판 프로그램, 종이접기 프로그램, 미술 프로그램, 영어연극 프로그램 등등. 그중에 오래 다닌 곳도 있었지만 한 달만 하고 그만둔 프로그램도 있다. 덤으로 말해보자면, 가장 오래 다닌 프로그램이 의외로 발레였고, 가장 짧게 다닌 프로그램은 미술 프로그램이다. 미술이 싫었다니 보다 선생의 만행이 조금 있어서 그만뒀다. 오히려 그림 그리는 것은 엄청 좋아했다.
아무튼 아이는 낮을 많이 가리므로 낯선 환경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리 대다수의 아이들이 적응이 빠르다 하지만, 예외의 아이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 예외의 아이에 내가 들어가 있었음을 부모님은 아셨을까?
그 해답은 부모님만 알고 계시겠지.
발레를 가장 오래 다닌 이유가 궁금하실 텐데(아니면.. 죄송해요..)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너그러운 발레 선생님이 좋았고, 환경에 익숙해지고 편해지니 쭉 다니게 됐다. 한 6살 까지는 그랬다. 7살이 되었을 무렵, 발레 선생님의 적극적인 발레리나 추천이 들어왔고, 엄마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 선생님의 말로는 발레를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춤선과 발의 곡선이 너무나 예뻤다고, 이 재능을 그냥 둘 수 없었다고 했다. 내 기억이 완전해졌을 6살 때 처음 들은 첫 칭찬을, 7살이 된 딸을 둔 부모에게 열정적으로 말하는 선생님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7살 때는 타인의 추천으로 정해진 발레리나라는 꿈이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내 것이 되어 정말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12살 직전까지 꾸준히 발레 프로그램을 다녔다. 약 7년을 발레에 뼈를 갈았다.
발레를 제외한 다른 프로그램들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내 시작, 선택에 관해 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적기 때문에 따로 적진 않았다. 대부분 엄마의 손에 따라 시작했고, 내 고집으로 그만두었다. 학습관의 프로그램들 말고도 정말 학원에 다니며 배운 것도 몇 개 있는데, 그것도 패턴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술 프로그램과 영어학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을 배운 것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미술 프로그램과 영어학원에 대한 악감정은 다른 책을 쓸 때 필요한 소재이므로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오늘 말한 이야기는 다른 것에 비해 꽤 길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이 완벽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정확히 전달되는지도 모르는 게 참 복잡 미묘합니다.
그리고 이번 편이 올라가면 저는 이제 브런치 스토리 정식 작가가 됩니다. 이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무겁습니다. 앞으로 올리는 내 글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은, 되려 설레는 감정이 높은 지금은 5살에 느꼈던 감정과 다르니 어떻게든 될 거라며 나 자신을 위로해 봅니다.
이 사람 성격이 조금 이상해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이 시트콤 같으니 성격마저 별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