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지민이가 한숨을 쉬었다.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연신 한숨만 나왔다.
나는 아이의 모습이 걱정스러워 다가갔다.
"지민아, 무슨 일 있어? 게임하면서 왜 한숨을 쉬니?"
지민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판타지 월드'라는 게임 알죠? 제가 2년 동안 해온 거..."
"응, 알지. 네가 용돈 모아서 캐릭터도 꾸미고 그랬잖아."
지민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게요... 이제 재미가 없어요. 근데 그만둘 수가 없어요."
"왜? 재미없으면 그만하면 되잖아."
지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안돼요! 제가 지금까지 이 게임에 쓴 돈이 10만원이에요! 용돈 모아서 조금씩 조금씩 샀는데..."
나는 의자를 가져와 지민이 옆에 앉았다.
"그래서 재미없는데도 계속 하고 있는 거야?"
"네... 그만두면 제가 쓴 돈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요."
지민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엄마,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캐릭터가 있는데... 이것만 사면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용돈 좀 더 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민아,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지민아, 만약에 네가 맛없는 음식을 시켰다고 생각해보자. 반은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음... 안 먹죠."
"그래, 맞아. 이미 돈을 썼다고 해서 맛없는 걸 끝까지 먹어야 할까?"
지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 그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그렇지! 이미 쓴 돈이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경제학에서는 이걸 '매몰비용'이라고 해. 이미 써버린 돈이나 시간 때문에 계속 안 좋은 선택을 하는 걸 '매몰비용의 함정'이라고 부른단다."
지민이의 눈이 커졌다.
"매몰비용이요?"
"응. 예를 들어볼까? 네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정말 재미없어. 그런데 '티켓 값이 아까우니까' 하면서 끝까지 본다면, 그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거야."
"아..."
지민이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민아, 네가 지금까지 게임에 쓴 10만원은 이미 지나간 거야. 그 돈 때문에 계속 재미없는 �임을 하는 건, 맛없는 음식을 끝까지 먹는 것과 똑같아."
"그런데 엄마..."
지민이가 망설이며 말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사면 다시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정말 그럴까? 아니면 네가 이미 쓴 돈이 아까워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지민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사실 새로운 캐릭터를 사도 게임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친구들도 이 게임 안 해요."
"그렇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지민이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말했다.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재미없는데 계속하면... 시간도 더 쓰고 돈도 더 쓰고... 결국 더 많이 아깝겠죠?"
나는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우리 딸이 정말 현명한 결정을 했네! 맞아, 이미 쓴 돈은 돌아오지 않아. 하지만 지금 결정을 잘 하면 앞으로 쓸 시간과 돈은 아낄 수 있어."
"근데 엄마, 그동안 모은 아이템들이랑 캐릭터가 좀 아쉬워요..."
"그건 당연해. 하지만 그동안 게임하면서 재미있었던 시간들도 있었잖아? 그건 네가 얻은 거야. 이제는 새로운 걸 시작할 시간이야."
지민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그동안 게임한 시간에 다른 거 해볼래요. 농구도 하고 싶고... 그림도 더 그리고 싶어요!"
"좋은 생각이야! 우리 내일 농구공 사러 갈까?"
"네! 근데 엄마, 매몰비용이라는 게 게임에만 있는 건가요?"
"아니, 우리 생활 곳곳에 있어. 어른들도 이런 실수를 자주 한단다. 예를 들어, 비싼 옷을 샀는데 불편해도 '돈 주고 샀으니까' 하면서 계속 입는다거나..."
지민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도 그런 적 있어요?"
"그럼! 작년에 산 운동화 기억나? 발이 조금 불편했는데도 '비싼 건데...' 하면서 계속 신었잖아. 결국 발에 물집만 생기고 새로 사야했지."
"맞다! 그때 엄마가 발이 아프다고 했었어요."
나는 지민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깨달았을 때 바로잡는 거야."
"엄마, 저 이제 알았어요. 이미 쓴 돈이나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앞으로를 생각해서 결정해야 해요. 맞죠?"
"그래, 정확히 이해했네! 우리 지민이가 이렇게 현명한 결정을 하다니 정말 기특하다."
지민이는 태블릿을 끄고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는 스케치북을 꺼내들었다.
"엄마, 저 이제 그림 그릴래요. 그동안 게임하느라 못 그렸던 거요!"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지민이를 바라보았다. 때로는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한 우리 딸이 자랑스러웠다.
매몰비용의 함정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대규모 프로젝트나 투자에서 이러한 함정에 빠지면 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0년대 후반 한국의 대우자동차입니다. 대우자동차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미 투자한 것이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1999년 부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소니의 베타맥스(Betamax) 사례도 유명합니다. 1975년 소니는 베타맥스라는 비디오 형식을 개발했는데, 경쟁사 JVC의 VHS가 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소니는 이미 투자한 기술과 설비 때문에 1988년까지 베타맥스를 고수했고, 이는 회사에 큰 손실을 안겼습니다.
2000년대 초반 코닥(Kodak)의 사례도 주목할 만합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필름 사업에 투자한 비용과 인프라를 포기하지 못해 디지털 전환을 미루다가 결국 2012년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성공적인 기업들은 과감하게 매몰비용을 포기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줄 아는 결단력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IBM은 1990년대에 하드웨어 중심 기업에서 서비스 중심 기업으로 과감하게 전환했습니다. 이미 투자한 하드웨어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을 선택한 것입니다.
넷플릭스도 좋은 예시입니다. DVD 대여 사업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을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위험한 결정으로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처럼 매몰비용의 함정을 피하고 미래지향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지민이가 게임을 그만두기로 한 결정처럼, 때로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