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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여인숙 여주인

가브리엘 포레

by 안개바다

비루한 청춘들의 성지 목련 여인숙에는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위로해 주는 늙은 천사 미스 민이 상주해 있다.

그 천사가 숨죽여 말하기를 목련 여인숙 여주인은 첼로를 전공한 음대 출신이라던가.


첼로, 깊은 밤의 서사

안내실 작은방.

에로이카 전축 속에서 첼로가 처연하게 울던 새벽에 내가 물었지.

"누가 작곡한 곡입니까?"

힐끔 쳐다보고는 귀찮은 듯 앙증맞은 요구르트와 돌돌 말린 수건만 내밀었다.

"첼로 맞지요. 누가 작곡한 곡입니까?"
또 한 번 물었다.

"가브리엘 포레 알아요?"

'무식한 새끼 네까짓 게 말해주면 알겠냐.' 경멸하는 눈빛으로 침을 튀기며 쏘아붙였다. 크레모아 터지듯 신경질 파편이 온몸 구석구석에 박혔다.

가브리엘? 포레? 날개 달린 천사 뭐 그런 건가?

가브리엘 포레가 누군지 궁금했지만 한 번 더 귀찮게 하면 물어뜯을 것 같아 포기했다.

첼로 얘기할 때 저렇게 핏대 세우는 걸 보면
음대 나온 여자가 맞긴 맞나 보다.

대통령 얼굴이 인쇄된 신문지 위에 신발을 들여놓고는 괜히 억울해서 낙서 가득한 장미 무늬 벽지에 낙서금지라는 낙서만 했다.


비 내리던 봄밤 또다시 찾아든 목련 여인숙.

오늘도 그날처럼 첼로의 슬픈 멜로디가 안내실 골방에서 여주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전축도 틀어놓고, 개성 있지만 혼란스러운 조합이다.

저 여자도 나처럼 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고민에 빠진 것일까.

말없이 밀어준 수건과 요구르트에 첼로의 축축한 목소리가 딸려 나왔다.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 프랑스 작곡가 꿈을 꾼 후에 맞지요?"

잘난 척을 했다. 나도 클래식은 좀 안다는 듯이.

그날 무시당한 게 열받아서 백조 음악 학원 원장에게 첼로와 가브리엘 포레에 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무허가 백조 음악 학원은 드럼과 기타를 전문으로 가르쳤으며 원장은 부업으로 카바레 제비족 생활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예 맞아요, 205호예요 빨리 올라가세요."

여전히 신경질적이며 냉소적이다.


새벽 두 시

비는 그쳤다.

올 때나 갈 때나 안내실에선 꿈을 꾼 후에가 리플레이되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포레를 말하지 않았다.

전축과 함께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화면 조정시간이라며 브라운관에 무지개만 띄워 놓았고 여주인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첼로의 선율에 맞춰 깜박깜박 졸고 있었다.


목련 여인숙엔 어울리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다.

간판에 온천 표시는 돼있는데 온천은 고사하고
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공동 세면장.

후진 여인숙에 첼로 전공한 음대 출신 여주인.

목련 꽃은 한 송이도 없는데 목련 여인숙이라고 우기는 뻔뻔한 간판. 심지어 방마다 검붉은 장미 벽지로 도배돼 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서로의 사연이야 어찌 됐건 오늘 밤엔, 첼로 전공한 여인숙 주인이나 허물어진 가슴 데리고 방문한 새벽 손님이나 자존감 바닥을 친 삼류 중에 삼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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