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나와 같이 외로움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바퀴벌레도 사랑할 수 있을까.
오늘도 일용한 양식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가끔은 내가 그려준 별을 단 바퀴벌레가 술자리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이 녀석도 주당이 확실하다.
흔들리는 술잔 옆에서 떨어진 술 한 방울과 새우깡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내가 해치지 않을 것도 아는듯했다. 아니면 인간을 우습게 봤던지.
그러다가 살짝 손가락이라도 가까이 가면 쏜살같이 달아나 숨어버린다. 다행히 자기 방어는 확실한 녀석이다.
아카시아 피던 새벽 딱딱한 등딱지에 작은 별 하나를 그려 줬었는데 늦가을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장수풍뎅이만한 체구도 그대로다. 바퀴벌레가 명대로 살면 몇 년을 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 먼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별의 살인자와 공범
"총각 있어?"
주인집 아줌마와 첫째 딸이다.
주인집 아줌마는 뚱뚱해서 옥상의 낡은 철 계단 올라오기 힘들다고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한 일 외에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첫째 딸 손에는 김치부침개 한 접시가 들려있다.
"아! 나도 그림배 우고 싶다. 너무 예쁘다."
구도만 잡아놓은 인물화를 보고 마음에도 없는 싸구려 칭찬을 지껄이고 있다.
주인집 첫째 딸은 나이 어린 여자 다섯 명을 두고 티켓 다방을 하는 마담인데 새벽에 술 처먹고 주정하다 나랑 싸운 적도 있는 껄끄러운 사이였다.
부침개를 권하며 주인아줌마가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다음 달부터 방세 오만 원만 올려줘야겠어."
어이가 없다. 계약기간은 아직 육 개월이나 남았는데. 무식하면 뻔뻔하다고 방세 올려야 할 이유를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조곤조곤 설명을 했다. 나는 무식하긴 했지만 뻔뻔하지는 못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 바퀴벌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가 선물로 준 별을 달고 화실을 느긋하게 기어 다니다가 주인집 딸내미가 내리친 선데이서울 잡지에 맞아 압살 당하고 말았다.
몇억 년의 전통을 가진 명문가의 자손 바퀴벌레를
삼류 다방 마담이 살해한 것이다.
"아유 집을 깨끗이 써야 벌레가 없지 이래서 총각한테 세주면 안 된다니까."
첫째 딸이 주인 행세를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맨 처음 이곳 옥상에 왔을 땐 그야말로 쓰레기 하치장 같았다.
친구 두 놈과 함께 이틀을 청소한 끝에 그나마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뭔 개소린지. 3층 옥상에서 끌어내린 쓰레기가 용달차 두 대는 됐었고 청소 인건비를 따진다면 족히 3개월은 월세 안 받아도 손해 볼 건 없을 것이다
내장이 터져 끈적거리는 잡지를 치우고 내려다보니 날개에서 반짝이던 별은 이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담 년의 머리채라도 잡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였으며 바퀴벌레 한 마리 죽였다고 따져 봤자 이해는 고사하고 미친놈 취급받을 건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집 좀 깨끗이 써요."
첫째 딸이 또 한마디 했다. 집주인의 혈족은 모두 집주인으로 대접받길 바라나 보다. 볼일 끝내고 내려가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바퀴벌레의 애도 기간 49일이 끝날 때까지 밤마다 촛불을 켜놓고 저년을 저주해야겠다고.
마담이란 두 음절도 과하다. 사창가 포주라면 딱 맞을까. 진혼곡으로 멕시코 민요 라쿠카라차를 크게 틀어 놓고는 바퀴벌레의 사체를 수습해서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 발밑에 묻어주었다.
다시는 바퀴벌레에게 별은 주지 않겠다.
별을 지켜주기엔 적들이 도처에 있었고 나는 별을 따라다니며 경호해 줄 빠른 발도 없었으므로 책임 못질 인연이면 처음부터 모른 체 외면해야겠다.
살얼음 투명한 늦가을.
옥상에는 바람만 남았다.
별도 죽고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마저 빈 대궁으로 흔들리고 있다.
드디어 내 곁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겨울이 문밖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영혼까지 얼어버리는 옥상의 겨울 화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묘비명
비록 천박한 여자의 손에 비명횡사했지만 한때는 가난한 인간이 몸서리치며 외로워할 때 별빛으로 반짝였던 곤충 오늘 영면에 들었다.
윤회의 먼지 속을 떠돌다 그대 다시 환생할 때에는 부디 은하수 푸른 숲 작은 별로 태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