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암자에서 스님들만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으랴.
회사 화단의 맨드라미가 얼마나 피고 졌는지, 이제는 나도 도를 닦고 득도를 했다. 후배에게 부처님 법문 같은 속 깊은 말 한마디 지껄일 수 있는 짬밥도 되었고 어린 팀장이 내뱉는 무례한 말투에도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수행이란 끝이 없어서 오늘도 번민.
기획안은 번번이 묵살되고 아이디어도 고갈됐을 때 믹스커피를 한잔 들고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수십 개의 중소기업이 운집해 있는 빌딩 옥상, 한창 일할 시간에 웬일들이신지, 정겨운 담배연기 속에서 나도 작은 불씨 하나 피워 올렸다. 언제나 바람뿐인 옥상, 옥상의 바람 속에서는 항상 휘발되지 않은 스트레스 냄새가 난다.
뒤에서 전자 담배 피우던 젊은 직원들이 하는 말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최대리 그 꼰대새끼 꼴 보기 싫어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야! 그래도 이만한 회사 없어 참아봐, 좋아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다른 회사도 다 거기서 거기다."
뿌연 한숨을 훅 내뱉는다.
거기서 거기란 체념의 말이 어제 내가 김 과장과 소주 마시며 했던 대화라는 걸 그대들은 알까.
딱 봐도 신입 티가 나는 청춘들도 나와 같다니.
참으로 한심한 세상이 도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반들이여! 아직은 가슴에 푸른 하늘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
시간에 저당 잡힌 그대들 청춘이 옥상 흡연실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화석이 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나.
나도 후배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혹시 내가 꼴 보기 싫어 이직을 생각하는 후배가 있다면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길. 작은 봇짐 하나 메고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갈 준비는 항상 돼있으니까.
결핍과 불만이 많을수록 상처받기 쉽다.
병아리 솜털 같은 부드러운 지적에도 참매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것처럼 쓰린 걸 보면 나는 아직 해탈하려면 멀었나 보다.
수행보다는 고행이다.
툴툴거리면서도 퇴사하지 못하고 지금껏 먹이를 받아먹고 있으니 고행에 가깝지 않은가.
고맙기도 하지.
마음공부하는 데 제일 큰 가르침을 준 스승은 낙하산 타고 내려온 부장과, 스펙 좋은 사장 조카
그리고......
성과 없는 야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