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 가족들이 앉아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앞에 두고 모두 웃는 얼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생일자는 초를 불어 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어린이 드라마 속 장면이 불혹이 된 이 나이에도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과 가끔 아웃백 같은 곳에 가면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창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독에 빠져 살던 시절에는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마치 정말 특별한 모임이 된 듯 일찍부터 만나 친구를 축하해 줄 케이크를 사고 분위기가 좋은 호프집을 찾곤 했다. 생일 축하가 끝나고 나면 잘 자른 케이크를 주변 테이블에도 나누어 주며 모르는 사람에게도 축하를 받고 밤새 웃고 떠들던 즐거운 시절이었다.
나는 생일이 다가오면 늘 우울감이 몰려오고 예민해진다.
탄생을 축복하고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인데 왜 항상 그렇게 내 생일이 싫었을까..?
나의 존재가 누군가를 불행에 가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생일이라고 축하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 안에 숨어있던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깨어나 나의 존재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상기시켜 주는 걸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장면은 아빠에게 맞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두 분 모두 술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거의 매일 밤 두 분은 취해있었고 그러다 서로 감정이 격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집안 살림들은 박살 나기 일쑤였고 아빠는 엄마를 때렸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날의 나는 겁에 질려 맞고 있는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다. 그런 두 분의 다툼은 너무 잦았고 동네에서도 우리 집은 시끄럽기로 유명한 집이 되어 있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아빠와 헤어지지 않는 엄마를 나는 어린 나이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나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고 했다. 혼자서 나를 키울 만큼 능력이 없고 그렇다고 나를 두고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연애시절부터 아빠에게 폭력성이 있어 결혼생각은 없었지만 임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빠와 결혼했다고 했다. 나의 존재 때문에 결혼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던 남자와 결혼한 여자.. 그 여자를 내가 평생을 불행하게 살게 만든 것이다.
엄마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나라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의 생일이 반갑지도 기대되지도 않는 날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느낌..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느낌..
또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존재로 인해 불행했던 나의 엄마의 삶에 미안함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