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빛의 각도와 가족 모두가 거실에서 뒹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주말 오후 2시쯤이었던 것 같다. 선인장 팩이라니. TV가 아버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해 유튜브에 검색해 보니 9년 전에 ‘생방송 투데이’에서 ‘남편이 질투할 만큼 선인장에 빠진 여자!’ 편에 소동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사건이언제부터 기억 속에 머물렀는지 모르겠지만 이때가 맞을 것이다.
옆집 할머니 집 창문 아래에는 선인장이 ‘ㄴ’ 자로 둘러싸 집을 지키고 있다. 손바닥을 닮아 가끔 저것으로 뺨을 맞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아버지가 정말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서랍에서 목장갑을, 주방에서는 과도를 꺼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칼로 몇 장 쓱쓱 쳐내어 금방 거실로 돌아왔다. 할머니의 동의가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허락이 없었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분명 몇 개 뽑아가라고 했을 것이다.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녹색의 겉껍질을 벗겨내자 연두색의 촉촉하고 반짝이는 속이 드러났다. 햇빛에 반짝이는 색이 아름다워 옆에 앉아 지켜보았다. 거실에 울리는사각사각 소리가 어느새 멈추었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해보겠냐고 물었다. 의심이 많은 삼 남매는 거절했고, 결국 어머니와 아버지만이 얼굴에 선인장 팩을 올렸다.
“아! 아프다! 뭐고 가시가”
한숨 자고 일어나 얼굴에 붙인 팩을 떼어냈다. 톡톡 두드려 남은 천연 앰플을 얼굴에 흡수시키려는데 뭔가 잘못됐다. 껍질을 벗길 때 가시가 깊게 박혀있을까 봐 이파리의 5분의 1만 남기고 다 잘라냈었다. TV에서는 믹서기에 갈아서 쓰던데 방법이 잘못된 걸까? 급하게 검색해 보니 속에도 가시를 품고 사는 독한 선인장도 있다고 한다. 의심하길 잘했다. 당황한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기다려보라고 하고, 어머니가 화장을 지울 때 쓰는 클렌징폼으로 세수했다. 여전히 가시가 남아있는지 비누로 얼굴을 문뗐고* 놀랍게도 모든 가시가 사라졌다.
“비누로 세수해 봐라. 이야~ 비누로 하니까 싹 다 없어진다.”
어머니도 바로 욕실로 들어가 비누로 얼굴의 가시를 씻어 내렸다. 수건으로 닦고는 나를 보는데 어라,정말 피부가 밝고 탱탱해진 것 같다. 역시 갓 수확한 신선도 100%는 다르다. 그리고 이 눈에 띄는 효과에는 가시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다이소에서 리들샷(미세침) 화장품이 유행했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선인장의 속가시가 수분과 비타민이 잘 흡수시키는 미세침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버지는 남편이 질투할 만큼 선인장에 빠진 여자도 모르는 9년을 내다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인장은 매년 노란색 꽃을 피우고 백년초 열매를 맺으며 20년째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가끔 선인장이 눈에 띌 때면 선인장 팩 소동과 하교할 때마다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시던 할머니가 생각나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