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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 Sep 24. 2024

우울의 유전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힘든 기억은 꺼내기 참 어렵다. 글을 쓰는 것조차 계속 망설여진다. 쓰다 지우다, 썼다 지웠다. 한 번은 극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울함이 덮쳐올 때마다 울고 넘어갔는데 감정을 표출해 보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보통 이런 내용은 불편하니까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말로 한 적은 몇 번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증상은 PMS라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일이니까 호르몬 때문이다 하고 넘겨왔는데 아니었다. 계속 피해왔구나 싶었다. 마음을 바꾼 이유는 별 게 아니라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력함이 심해서 일상생활이 힘들게 느껴진 지 2 달이다. 그전까진 매번 목표가 있어 그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으로 도망쳤지만 현재는 목표가 없다. 정확히는 다음 목표를 정하지 못했다. 이 기간이 4달이 되니 2달 전부턴 모든 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그전까지 바쁜 일정을 산 것도 이유가 될 듯싶다. 매주 많은 일을 하다 보니 금요일 저녁부터 힘들어서 토요일 오후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온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힘들어서 일부러 약속을 안 잡았다. 그러다가 억지로 약속을 잡아 극복하려 했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걸 놓아버리게 됐다.



놓아버린 후엔 누워서 노래 듣고 유튜브 보고 가끔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썼다. 그렇다고 커리어 관련 공부를 안 한 건 아니고 그것도 가끔 봤다. 빈도수는 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Y를 알게 된 후, 조금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조금 찾았다. 계속 배우려고 한다. 그게 나한테 맞는 일이란 걸 느꼈다. 덕분에 요리 절대 안 하겠다고 한 다짐을 버리고 샌드위치도 혼자 만들어 먹기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서양미술사 수업도 등록해서 듣게 됐다. Y는 원래 그런 삶을 지향해서 한 말이지만, 그래서 더 편하게 와닿았다.



하지 않던 요리를 하고, 주말 오전에 미술사 수업을 듣고, 낙서도 하고, 글도 쓰고.

여전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정이 없으면 나가기 힘든 건 똑같지만 그래도 점점 관심사가 넓어졌고 글을 매일 쓰고 있다. 짧은 글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데, 긴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이 참 기쁘다.

예전에도 힘든 감정이 들 때마다 글을 쓰곤 했다. 글을 쓰는 초반엔 떨리던 마음이 중반을 지나가면 점점 차분해진다. 생각이 많은 건 가끔 힘들지만, 그렇기에 생각을 적어내는 일을 할 수 있기에 좋다.

누군가는 나처럼 이렇게 매일 글을 쓰는 게 힘들 테니 말이다.



글을 쓰면서 우울을 흘려보내려 한다. 힘든 기억을 쏟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우울하면서도 낙관적인 것도 타고난 내 성향이겠지?

다행히 좋은 것도 받았으니 좋은 것들에 집중해 보자. 10가지 좋은 일보다 1가지 힘든 일에 지배당하는 것에서 벗어나보자. 좋은 기억을 더 글로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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