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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콘파냐 Oct 18. 2024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옷장을 열다 깨달은 무엇

아이방을 지나다가 문득 지난 출국 짐가방에서 탈락했던 옷들이 생각나서 이번에 내가 갈 때 갔다 줘야겠다 싶은 생각에 옷장으로 향했다. 그냥... 정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의미를 두지 않고 양손으로 옷장을 열었는데 아이의 옷이 빈자리가 드러날 만큼 성기게 걸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 딸 옷이 많이 없었구나...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남은 옷의 80%가 여름옷이다. 9월에 떠나느라, 추운 나라로 가는 아이가 떨까 봐 두꺼운 옷만 고르고 골라서 진공포장으로 꾹꾹 눌러 담다 보니 그 옷들이 가고 남긴 공간이 휑하다. 차분히 한쪽에 걸린 여름옷들을 보고 있자니 슬슬 마른 눈물이 시동을 건다. 괜히 남겨진 옷들이 여름이라 또 서럽다. 꾹 삼키고 몇 안 되는 남은 긴팔들을 넘겨보는데... 그런데... 옷장에서 아이 냄새가 난다. 방금 전에 옷을 꺼내 입고 학원 갔을 것 같은, 좀 전까지 이곳, 내가 선 자리에 머물렀을 것 같은 생생한 아이 냄새에 결국 또 그리움이 사나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금방 교복 입고 현관문에 들어설 것 같은 아이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당장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이 나고 서럽다. 한동안 덤덤하게 지내는 내가 기특해서 이제 좀 적응했나 보다 싶다가도, 심호흡 몇 번과 하늘보기 몇 번에 마른 울음 꺼트리다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어느 한순간이 온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인정하기 싫어 외면하고 뒤돌아서며 걷다가 방심한 순간 현실을 마주하면 그동안 마음 어딘가에 고여있던 그리움이 주저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랬다. 

그리움에는, 눈물에는 정량이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 눈물이 줄어들고 그리움이 시들해지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늘 그립고 늘 보고 싶고 늘 서러워서 

어차피 가끔씩은 이렇게 쏟아내고 비워내야 하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채워지고 있는 것일 뿐.


결국 옷을 고르려고 옷장을 열었다가 옷장을 닫으면서 눈물만 한 바가지 쏟아내고 수확 없이 끝이 났다.


어떡하지...

캠프를 간 거면 일주일을, 이주일을

어학연수를 간 거면 한 달을, 반년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고등학교를 이제 들어갔고 

거기서 졸업하고 외국대학을 갈 거고 

외국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취직을 할 건데


어떡하지...

어쩌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

떠나기 전,  

수없이 아이에게 계속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다짐을 받았다.


그런데 미처 몰랐다.

그 질문은 나에게 내가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너 감당할 수 있겠어?"

 나는 왜 이 질문을 이제야 옷장을 열면서 내게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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