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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콘파냐 Oct 21. 2024

나는 가야 하니까

피하고 싶은 순간은 예고 없이 온다.

한국시간 오후 4시, 아이의 시간은 아침 8시

학교 갈 준비에 아침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임에도 영상통화가 왔다. 화면의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결국 왔구나...

부디 감기만은 걸리지 말기를...

더욱이 코로나, 독감 등 더 지독한 아이들은 비껴가기를...

아이가 떠나기 전부터 간절히 바랐었고

떠나는 짐에 감기약을 한봉다리 넣으면서도 부디 쓸 일이 없기를 바랐고

기숙사방이 춥고 공기가 차갑다는, 내내 우중충하게 구름 끼고 비가 자주 오는 영국날씨를 이야기할 때마다 속으로 또 바랬다.

제발 아프지 말기를...


마스크를 쓰고 눈이 풀린 채로 화면의 엄마라도 보겠다고 아침 일찍 영상통화를 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안쓰러우면서도 애써 덤덤하게 하나씩 물었다.

가져간 약은 먹었는지

어디가 아픈지

아침은 먹었는지

양호실 가면 인근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아침은 가져간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한 숟갈 뜨려다가 속이 메스꺼워서 못 먹은듯했고

양호실을 가도 진통제만 받을 수 있고 학교 결석을 허락해 준다는데 "나는 가야 하니까"

아이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몸이 아파서 학교를 쉬고 싶지만 그러면 엄마아빠가 실망하시니까 나는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러 온 거니까 가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나직한 다짐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말이 무거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린다.

속으로 학교 가지 말고 쉴래?라고 이야기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혼자 기숙사방에 누워서 끙끙 앓는 것도 걱정이 되어서 일단 수업을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따듯한 물 많이 마시고

비타민 부지런히 먹으라는

이 말만 여러 번 반복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다시 연락 달라고 하고 끊었다.

계속 화면을 붙들고 싶고 엄마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멈춰있는 아이 대신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마스크를 쓰고 화면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그렇게 사라졌다. 잔인했지만 내가 여기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이가 가기 전에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프면 어떡하지... 태어나서 지금껏 아플 때는 늘 엄마아빠가 곁에서 보살펴줬었는데 지구반대편 작은 방에 홀로 고열과 인후염과 싸워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전화를 끊고 울음이 터졌다. 쿨패치가 아쉽다는 아이 말에 손수건에 물 적셔서 쓰라고 했더니 이마에 붙이고 수업을 가면 좋을 텐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당장 근처 약국에 달려가서 쿨패치 사서 화면 너머의 아이에게 주고 싶은데 그깟 쿨패치 바로 사 올 수 있는데... 잊고 있던 아이와의 거리가 또 한 번 현실이 된다.


며칠후면 엄마가 오니까 긴장이 풀려서 아픈 걸까.

나는 뭘 더 챙겨가야 할까.

아이를 만나서 며칠을 같이 있다가 아이를 그곳에 두고 돌아서서 혼자 한국으로 오는 길도

그 작은 방에 한 달 반동안 겨우 적응했는데 엄마의 손길과 흔적이 채색된 공간에서 외로움만 더 커지는 게 아닌지 그렇게 홀로 남겨 아이가 만나기 전부터 걱정이다.


6시가 되기도 전에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차창 너머로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원을 가고 있다.

오늘따라 우리 딸이 유독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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