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
한 번씩 뒤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을 가끔 만나곤 한다. 주차할 곳을 찾느라 몇 바퀴를 헛걸음치듯 뱅뱅 돌고 있을 때, 어느 자동차 운전석 창 너머로 수신호를 보내오는 사람을 만난다. 양손 가득한 책들 속에서 흘러내린 작은 메모 조각 하나를 어쩌지 못해 그냥 지나치려 할 때, 바삐 지나가다 되돌아와 허리 굽혀 줍고는 책갈피로 넣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동네 산책길 화단에 누군가 쌓기 시작한 조그만 돌탑은 몇 달이 지나도록 허물어지지 않고 나날이 높이를 키워간다. 거리를 오가며 돌멩이 하나를 곱게 쌓아 올리는 사람들을 스치듯 만난다. 나의 난감하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읽는 사람들, 돌탑 쌓기에 기울인 마음을 존중하는 사람들.
앞표지를 넘기면 파란색 면지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 그림책은 우리 일상 속 다양한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쓰는 사람, 누군가의 외로움을 알아차리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른 편의 우승을 축하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 자신의 마음에 조용히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팍팍한 삶에 유머 한 줄기로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 항상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에 대해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
이 이상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파란색’ 색감을 품고 있다. 파란색 스웨터와 바지를 입고 있거나, 파란색 신발을 신고 있기도 하고 파란색 모자를 쓰고 있다. 앞장에서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이상한 사람은 다음 장에서 파란색 나비 넥타이를 멘 이상한 사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그림책을 넘길 때마다 파란색 릴레이가 이어진다. 마지막 장의 그림은 학교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수많은 아이들은 ‘반드시’ 파란색 무언가를 몸에 하나씩 품고 있다. 그것이 ‘이상한 사람’의 징표라도 되는 것마냥.
가느다란 펜화에서 파란색 채색은 잉크의 농도가 더해져 얼핏 남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파란색이 상징하는 것이 차가움인지 시원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상한 사람들은 늘 마음 한 켠에 여유로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란색 희망이기도 하고, 파란색 자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는 파란색 외로움일 수도 있다. 왜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지는지 정작 알지 못함에서 오는 파란색 슬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 장, 아이들 그림 여백에 이렇게 써 놓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텍스트는 앞으로 거슬러 가 표제지의 ‘쫌 이상한 그대에게’라는 간략한 문구와 연결된다. 그림책 속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미리 독자에게 ‘이상해질’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림책을 보는 독자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림 속 이상한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 사람들이 왜 ‘이상한’ 사람들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에 감사한 만큼 왜 우리는 선뜻 ‘이상한’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지 설명하기 부끄럽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함’이 소곤거리며 가끔 내 마음을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이런 독자의 마음을 이미 꿰뚫고 있다. 큰 도전이나 용기가 필요하지 않음을 제목에서 애교섞인 목소리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쫌!’ 이상하면 된다고, 조금도 아니고 ‘쫌’만 이상하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