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경영 악화를 겪으며, 나는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해고 수당은커녕 퇴직금도 불투명한 상황이었고, 부당 해고를 두고 회사와 다툴 여력조차 없었다. 그렇게 3년에서 딱 1달 모자란 2년 11개월 차에 실직자가 되었다. 나는 회사에 충분히 비전이 있다고 믿었고, 파트장으로서 시스템도 제법 안정적으로 잘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팀원들과의 호흡이 너무 좋았는데, 이제는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웠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회사 탓으로 돌리며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이직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온 개발자라는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나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된 이상 이직을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혹했다. 코로나로 반짝했던 개발자 붐은 거품처럼 꺼졌고, 좋지 않은 경제 상황 속에서 채용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이직을 잘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는 어느새 '과연 이직이 가능할까?' 하는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무기력한 한 달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몸이 조금씩 편안해지니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단편적이고 쓸모없는 생각들이었지만, 점차 내 내면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의식이 모여가는 것을 느꼈다. 다소 두서없었지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해가다 보니 문득, 이 생각들을 흘려보내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흩어지는 생각들을 붙잡을 방법을 고민한 끝에, "글을 한 번 써볼까?"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무엇을 쓸지 생각하니 갑자기 신이 났다. 최근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그저 나의 생각을 담을 그릇을 정했을 뿐인데, 한 글자, 한 문장 적어 내려갈수록 흐릿했던 거울이 점차 깨끗해지며,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그릇을 채워가다 보면 더 명확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유튜브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보통 사람의 단순한 취향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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