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 후 몸이 편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 중 가장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쉴 틈 없이 한 길만 달려왔던 나로서는,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던 게 당연했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여러 번의 이직 경험 속에서도 이직 사이에 텀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당장 월급이 필요해서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불안감'이었다. 남들은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이 시간에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그 불안감. 이런 감정은 이직 사이뿐만 아니라 연차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기에 그 불안감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바로 이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직전에 퇴사한 지인과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퇴사하신 지 4개월쯤 되셨을까? 서로 안부를 묻다가 전해 들은 첫 소식은, 그분이 현재 여수에서 워케이션 중이라는 것이었다. 지인은 10년간 그 회사에 몸담았고,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이직이 아니라, 일에 지쳐 '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 계획 없이 퇴사를 감행한 것이었다.
그분은 퇴사 후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쉬는 동안 점차 정리되었고, 자신이 여전히 디자인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다 주위에서 하나둘씩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게는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렸다. 물론 자유로운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지만, 아직 금전적으로는 여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디자인 외에도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지인이 부러웠다.
지인은 어떤 형태로든 한두 달이라도 쉬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천사 같은 분이었다.
지인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다 보니,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해야 할 것은 불안감을 잠재우고, 차분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는 개발자로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싫어하진 않는 것 같다. 코드를 잘 짜낼 때 느껴지는 보람과 희열이 분명히 있다. 직전 회사에서 나는 한 파트를 관리하는 파트장으로서 팀원들과 소통하며, 각자의 능력을 고려해 프로젝트 업무를 분배하고 일정 관리를 담당했다. 또 다른 파트들과의 소통도 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이 포지션이 나와 정말 잘 맞았고, 팀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었기에 이 조직이 오래 유지되도록 더 열심히 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포지션으로 이직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채용 시장은 내게 너무 차가웠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지만, 3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비록 직접적인 이유는 아닐지라도, 묵직하게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굳이 한 가지 직업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직업의 형태를 고정할 필요가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일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하면 된다.
일은 상황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개발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으며, 평소 쓰고 싶었던 글을 써보며 새로운 길을 열어볼 수도 있다. 좋은 여건이 되면 회사를 다닐 수도 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바쁘면 바쁜 대로, 한가하면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것.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 마음은 살랑살랑 부풀어 올랐고, 이 마음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프리워커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보통 사람의 단순한 취향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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