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공포증 이겨내기
프리워커로서의 첫걸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초반에는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을 토해내듯 써 내려갔지만,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갑작스레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전혀 되지 않았다. 큰 벽 앞에 막혀 한 글자도 나아가지 못하는 듯했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나는 분명히 겪어본 적이 있었다. 일종의 ‘백지 공포증’이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해서 미대에 진학했는데, 입시 준비 때는 그려야 할 대상이 명확히 주어져서 나는 그리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나니 그려야 할 대상을 찾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백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 이 백지 공포증을 해결했을까. 결론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벤치마킹도 많이 하고 어찌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결국 그것들을 나의 것으로 오롯이 소화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졸업했고,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로 첫 취업을 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디자인을 하는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웠고,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디자이너들은 훨씬 더 고퀄리티의 작업물을 끊임없이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개발자로 업무 전환을 하게 되었고, 정해진 답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최근까지 개발자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 내가 글을 쓰면서 맞닥뜨린 상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때와 달리 해야만 했던 것이 하고 싶은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르다. 글을 쓰고자 했던 마음은 사실 거창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유려한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지금 머릿속에 있는 많은 생각들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Del 키'를 누르며 쓴 글을 번복하고 있었다. 짧은 글 하나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내가 정말 글을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구독하는 작가님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글을 올린다는 알림이 오곤 하는데, 그 알림을 보며 ‘나도 써야 한다’는 부담감과 동시에 저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님들의 능력에 부러움을 온 정신으로 느꼈다.
백지 공포증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백지 공포증은 글을 쓰거나 창작 활동을 할 때 빈 화면이나 종이 앞에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말한다. 특히 완벽주의적 성향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커져 공포증이 심해질 수 있다. 정말 내가 딱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글을 쓴 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나의 속내는 큰 욕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올려봐야 많이 보지도 않는데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야지’ 했으면서도, 결국 사람들이 내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못 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글이 써지지 않는 순간에 나는 나를 위한 글쓰기가 아닌, 남을 위한 글쓰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또한 창작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라고 여기고 부담을 줄여나가 보려고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보통 사람의 단순한 취향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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