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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로 인해 잔뜩 찌푸렸던 잿빛 하늘. 석양의 붉음이 곁들여지며 자황색 긴 천이 머리 위로 둘러 있다. 창문이 있지 않은 지금의 사무실은 바빠서 짬을 내지 못하는 날엔 이런 하늘색마저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석양이 지는 이 맘 때가 싫었다. 해는 살아있는 것들의 시작을 알린다. 시작부터 성장까지 살아있는 것들의 맥박을 뛰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한다. 해가 지는 것은 끝을 알린다. 내일을 향한 준비라는 희망이 있을 수 있지만, 난 그런 어둠이 싫었다. 어둠의 밀어냄을 견디다 못해 수그러지는 해의 억울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녀가 석양이 지는 이 즈음, 석양의 붉은 얼굴로 나를 떠났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석양이 지는 이 즈음, 항상 그녀를 찾았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녀는 석양 밑 어둠 속에서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즈음이 소름 끼치게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의 엄마다. 중학생인 나를 두고 아무 말 없이 그녀는 석양이 지는 이 즈음에 해가 지듯이 무너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그래서 그런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대할 때면 그녀의 냄새가 난다. 혹시라도 그녀가 잠깐 그들 속에 들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냄새를 맡고 나면 한 동안은 슬프거나 외롭지 않다. 눈뜨고 있는 언제나 그 냄새를 찾아 헤매게 된다. 얼마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덜기 위해.
-한미소 과장! 어제 시행된 문서 결재 올렸나요?
부지점장님의 버럭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아! 네. 여기.'
엄마가 떠난 이후 나의 삶은 매우 축축했고, 습했다. 어둠 같은 긴 터널을 건너가는 방법이 여럿 있었겠지만 내겐 타고난 천성이 약골이었다. 몸도 마음도 약골이었다. 나의 화끈한 친구! 민서라면 터널을 폭파시키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고, 잔머리의 끝판왕 예은이라면 터널의 비상구를 찾았을 것이다. 나는 무채색, 무향의 약골이었다. 그냥 빛이 보일 때까지 걷고, 뛰었다. 짜인 틀 속에서 던져지는 데로, 보이는 데로 견디며 걸을 뿐이었다. 다만, 그 엄마의 그 향이 날 때만이 나의 이성은 방향을 잃었다. 엄마에 대한 갈급이었을까.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급이었을까. 그 갈급을 해소하고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오히려 기뻤다. 다른 것에 비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컴퓨터 공학이란 전공분야를 뒤로 하고 삼수 끝에 은행에 입사하게 된 것도, 집착스런 이 갈급이 주도면밀하게 이끌어 가는 듯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나오는 직장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들이 내게 다가왔고, 그들이 내게 그들을 보여 줬다. 열린 꽃술에서 벌이 제 온몸으로 꿀의 향연을 음미하듯이, 나 또한 그들의 무언가에서 엄마의 냄새가 느껴질 때면 그 근원에 내려앉아 온몸으로 엄마의 향연을 음미하곤 했다. 그러면 되었다. 요즘 엄마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녀가 있어 삶의 긴장도가 증폭되고 있다. 출근하면 그녀에게 주파수를 고정하고, 그녀의 표정을, 그녀의 미소를, 그녀의 한숨을 음미하고 있다.
고영미 청원경찰! 오늘도 그녀는, 아니 영미언니는 출근하는 나를 엄마처럼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고 있다!
처음 봤을 때 영미언니는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어우러지지 않는 색감의 얇은 옷들과 진회색의 벙거지 모자를 걸치고 있던 영미언니. 가로 새겨진 입가의 주름과 얼굴 양쪽의 툭 튀어나온 광대뼈는 언니를 더욱 고단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런 언니에게서 엄마가 보였다. 고단해 보였지만, 슬퍼 보이지는 않았던 엄마처럼. 평소엔 숫기도 없던 내가 사냥감을 포착한 듯이 이성을 잃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언니에게 청원경찰이 돼 달라고 애원했으니. 아직도 언니의 어안이 벙벙했던 표정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긴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영미언니는 지금 우리의 지킴이를 누구보다도 잘 해내고 있다.
영미언니는 직원들 사이에서 미키호테로 통했다. 주눅 들어 어눌했던 청원경찰의 초창기. 누구를 만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얼굴이 새빨개지기 일쑤였다. 보름쯤 지났을까. 언니가 하룻밤만에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손님을 봐도 우렁차게 인사를 했고, 고객이 난이도 있는 질문을 던질 때면
-제가 나이만 많았지 아직 모든 일이 서툽니다! 제게 잠시의 짬을 허락해 주신다면 얼른 해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어떤 용무를 보러 왔다고 말했던 고객조차도 갑자기 들이닥친 자기 고백과 정중한 허락요청에 당황한 기색이 역렸했다. 그 목소리 또한 사무실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더불어 발검을도 힘차졌고, 얼굴의 표정들도 의기양양 해졌다. 직원들 모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과장님! 아니 미소야. 요즘 내가 좀 속상해했잖아. 손님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어제 퇴근해서 도움이 될 만한 게 뭐 없을까 해서 딸아이가 보던 책장을 좀 살펴봤거든. 이런저런 책들을 꺼내서 잠깐씩 읽어 봐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근데 책장 제일 밑에 딸아이가 읽던 만화책이 몇 권 있길래, 쭉 훑어보다가 한 권을 골라서 내가 어제 다 읽어버린 거 있지. 그 책 이름이 뭔지 아니? 돈키호테!! 나 그 책 읽다가 감동해서 눈물 나올 뻔했다니깐. 주인공이 산초인가? 알론소 키하노인가? 호호~ 암튼 그 돈키호테가 편견 어린 세상 시선 다 극복하고, 꿋꿋한 모험을 펼쳐가는 모습이 딱 나에게 하는 말 같더라고. 세상풍파 다 겪은 나 고영미가 지금보다 바닥이 더 어딨겠어. 세상사람들이 다 비웃더라도 나 고영미 돈케호테처럼 모험을 해보기로 하자! 다짐하고 오늘 미친 척 한번 해본 거야.
지나는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며 웃어넘겼지만, 그날 이후로 영미언니는 정말로 변화하고 있었다. 말에, 행동에 거침이 없어 보였다. 일부러 씩씩한 척 내는 말투가 지금은 언니의 말투가 되었고, 무엇이든 앞장서서 해보려는 그녀에게 우리는 돈키호테에서 돈자를 빼고 영미언니의 미자를 첨삭하여 미키호테라 부르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동네 복지센터에서 시 짓기 관련 수업을 듣고 난 후터, 어딜 가든 시를 적던 작은 수첩을 지니고 다녔었다. 영감이 떠오를 때 바로 써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가 시를 쓰는 이유는 연말에 복지센터에서 개최되는 작품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출품해서 작품을 인정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출품 선정작에 지급되는 20만 원 상당의 상품권에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끝내 상품권을 따냈고, 그 후로도 엄마는 작은 수첩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엄마와 영미언니의 모험이 어딘가 모르게 닮은 데가 있었다.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창피함을 피하지 않고, 소질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노력과 끈기로 버텨가는 모습에서 두 명의 여성이 포개진다. 엄마의 냄새가 사무실 전체에 그윽해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영미언니는 사무실에서 나오는 폐지, 캔, 병 등을 따로 모아 봉지가 꽉 찰쯤에, 그 봉지를 들고 퇴근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살림살이가 팍팍해 조금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그것들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만 여겼다. 영미언니, 나 모두 사무실 근처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워킹족이었다. 어느 날 퇴근하다 보니 누군가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봉지 몇 개를 낑낑대며 들고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도와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그때 김백만 할아버지 댁 대문 앞에 그녀가 그 봉지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인심이 아무리 각박해도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다니. 그것도 내가 아는 김백만 할아버지댁 집 앞에. 법인을 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검을이 대문 앞에 거의 다다렀음 쯤, 법인도 나도 모두 너무 놀랐다. 그 범인은 다름 아닌 영미언니였다.
-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어머. 깜짝이야! 미소야~ 미소야 말로 퇴근 안 하고 여기는 웬일이야?
-지나는 길이었는데, 누군가 김백만 할아버지 댁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길래, 그 법인 잡으로 온 거죠.
-호호호~ 그랬구나. 음....., 미소 너한테 김백만 할아버지 댁 얘기를 듣고 나서 나도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뭔가를 해드리고는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진 게 없잖니. 그래서 사무실에서 나오는 재활용품들 모아서 몰래 대문 앞에 놓아두고 가는 길이었어. 오늘 너한테 딱 걸렸네.
-아...... 할아버지께서 누가 재활용품을 집 앞에 두고 간다고 하더니, 그게 언니 었구나......
영미언니와 처음 치맥을 하던 그날, 김백만 할아버지 내외 분에 관한 사연들을 들으며 영미언니는 눈시울을 붉혔었다. 어쩜 삶이 그리 가혹할 수 있냐고. 작지 않은 부피의 아픔을 짊어지고 사는 자들도 타인의 아픔을 같이 할 수 있는 위로의 공간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아픔의 부피만큼이나 위로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이 생기는 것일까? 영미언니의 글썽이는 눈을 보고, 잠깐이지만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소름 끼치도록 이기적인 나 자신에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할 말을 잃고 영미언니를 넋을 잃고 바라봤다. 엄마의 냄새뿐만 아니라, 엄마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내일 보자는 인사와 함께 발길을 돌렸던 영미언니가 먼발치에서 손을 입에 모으고 소리쳤다.
-미소야! 요즘 미소 덕분에 사는 맛이 좀 난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잠깐이었지만, 알량하게 냉소적인 나 자신이.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얻게 된다. 아픔은 아픔을 아는 사람이 위로하고, 토닥여 주는 것이라고. 절망의 절벽 속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들은 누군가의 지푸라기가 되어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