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코노미아로 알 수 있는 '음식의 본질'
우리는 왜 먹방을 볼까? 그 이전에 '오이코노미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코노미(Economy)의 어원은 오이코노미아(oikonomia, οἰκονομία)로,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오이코스(Oikos, οἶκος) → 집, 가정,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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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스(Nomos, νόμος) → 법, 관리, 규칙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원래 '가정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법’을 의미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 개념이 아니라, 가정의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경제 활동이 현대처럼 시장 중심이 아니라 가정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경제를 ‘국가 차원의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가정의 살림살이’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개념이 확대되었고, 가정의 자원 관리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자원 분배와 관리를 포함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특히 산업화 이후 경제학(Economics)이라는 학문이 등장하면서, 오이코노미아는 단순한 가정 경제를 넘어 국가와 시장의 운영 원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결론적으로, ‘이코노미’라는 단어의 기원은 단순한 돈과 시장의 개념이 아니라,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학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소비하며, 어떻게 삶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도 확장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직접 요리하는 시간을 줄여가면서도, 먹는 행위를 지켜보는 것에는 열광한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먹방(먹는 방송)이 업로드되고, 사람들은 이를 소비한다. 과거 가정은 생산과 소비가 공존하는 공간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점차 소비 중심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제 부엌과 식탁은 점점 사라지고, 식사는 개별적인 행위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먹는 행위를 직접 하는 것’보다 ‘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 더 끌리는 것인가.
먹방은 가상의 식탁이다. 과거의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함께 먹는 행위는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 따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비대면 문화로 인해,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환경에서 먹방은 가상의 식탁 역할을 한다. 우리는 화면 속 크리에이터가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함께 식사하는 듯한 대리 경험을 하게 된다. 먹방이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ASMR 요소(씹는 소리, 조리 과정 등)와 감정적인 소통까지 포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이코노미아의 개념 속에서 과거의 가정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생산의 공간이었다. 특히, 부엌은 중요한 생활의 중심이었으며,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배달음식이 보편화되면서, 요리를 직접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우리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많은 먹방 콘텐츠는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부터 보여주거나, 음식의 질감과 향을 강조하며, 크리에이터가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의 생생한 경험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이는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무의식적인 그리움을 자극한다. 우리는 먹방을 보며, 요리의 본질적인 경험을 간접적으로 되찾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 소비’보다 ‘음식의 본질’을 원한다. 먹는 행위는 단순한 칼로리 섭취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이다. 씹는 소리, 바삭한 질감, 육즙이 터지는 순간의 시각적 쾌감… 우리가 음식을 직접 먹지 않더라도, 그 감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만족을 느낀다. 먹방은 이러한 감각적 요소를 극대화하는 콘텐츠다. 특히 ASMR 스타일의 먹방은 음식의 소리, 질감,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여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즉, 먹방은 단순한 음식 소개가 아니라, 현대인이 점점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 ‘식사의 본질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먹방을 통해, 직접 먹는 것 이상의 감각적 쾌감을 얻는다.
우리는 먹는 행위의 본질을 잃고 있다. 먹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현대적인 식문화에서 상실한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동체적 식사의 경험의 결여는 먹방을 통해 가상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요리 과정과의 단절은 먹방을 통해 음식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접 경험으로 해소하고자 한다. 소비 중심적인 식문화는 먹방이 제공하는 감각적 몰입감으로 대리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편리한 식문화를 추구하면서, 정작 먹는 행위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먹방의 유행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이런 결핍을 채우려는 현대인의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먹방을 소비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오이코노미아의 개념 속에서, 집과 식문화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직접 요리하지 않으면서도, 남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열광하는 모순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먹방을 보는 것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음식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모여 먹지 않지만, 여전히 먹는 행위의 사회적 본능을 잊지 못하고 있다.